통계청이 지난 연말 내놓은 2016년 생명표에 따르면 앞으로 평균적인 한국인들은 82세까지 살게 된다. 현재 40세인 남성은 약 40.4년을 더 생존하게 되고 여성은 이보다 6년이 더 긴 46.2년을 더 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평균 수명 연장이 반드시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수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서다. 특히 평균 수명이 상대적으로 긴 여성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6년 태어난 여자 아이의 기대수명은 85.4세에 이르지만 건강수명은 65.2세에 불과해 2012년 출생 여아(건강수명 66.5세)보다 도리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앞으로는 인생에서 20년 이상을 아픈 상태로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보험업계에서 건강증진형 상품이 주목받는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의료 기술 발달 등으로 수명이 늘어나는 대신 유병(有病) 기간도 늘어 건강하게 남은 생을 보내는 방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빅데이터를 보험업계의 새로운 먹을거리로 육성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더해지면서 건강증진형 보험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AIA생명은 많이 걸으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무) Vitality 걸작 암보험’을 최근 출시했다. 상품명인 ‘걸작’은 ‘걸’으면 보험료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보험 가입자가 스스로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면 그만큼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는 의미다.
이 상품의 보험료 할인 혜택을 받으려면 AIA생명 마스터플래너를 통해 바이탈리티 액티브(Vitality Active) 회원가입을 하면 된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걸음 수를 측정해 상품 가입 후 1년이 되는 시점에 1만포인트를 달성하면 월 납입 14회차 이후부터 보험료(특약보험료 포함)의 1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하루에 7,500보를 걸으면 50포인트, 1만,2500보 이상 걸으면 100포인트가 쌓인다.
ING생명도 최근 ‘라이프케어 CI종신보험’과 ‘라이프케어 변액CI종신보험’을 개정해 출시했다. 이 상품의 특징은 선제적으로 고객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점이다. ING생명의 걷기 운동 앱 ‘닐니리만보’를 활용해 1년간 하루 평균 1만보 걷기를 실천하면 ‘만보달성 축하금’으로 최대 50만원까지 준다. 또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관하는 대국민 스포츠복지 사업인 ‘국민체력100’을 통해 체력을 인증 받으면 등급에 따라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받게 되고, 상품 가입 후 1년 내 인증센터를 방문해 체력을 측정하면 등급에 따라 ‘국민체력 인증 축하금’을 받는다. 월 보험료의 최대 50만원까지 현금으로 1회 돌려받을 수 있다.
피보험자의 건강을 직접 관리해주는 상품도 있다. 삼성화재가 출시한 ‘건강을 지키는 당뇨케어’는 가입자가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 ‘마이헬스노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용 앱을 통해 일대일 맞춤형 메시지를 보내준다. 식단 및 운동 스케줄 등을 보내주는 식이다. 이 보험에 가입하면 오는 6월부터 건강증진형 서비스인 ‘애니핏’도 이용할 수 있다. 애니핏은 걷기·달리기 등 운동 목표를 달성하면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포인트를 제공한다.
KB생명이 내놓은 ‘KB착한정기보험Ⅱ’는 가입 고객이 비흡연자인 경우 보험료를 최대 26% 깎아준다. 또한 혈압, 체질량(BMI) 지수, 총콜레스테롤, 공복혈당 등 수치가 일정 수준에 해당하면 최대 41%까지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처음 가입할 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금연 후 1년 경과 시점의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다만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건강증진형 보험이 더 활성화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체계적 보험상품을 개발하는데 필수적인 빅데이터 활용이 지지부진하다. 실제로 국내 보험사들이 내놓은 건강증진형 상품은 대부분 걸음 수를 자체 측정해 보험료를 깎아주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암환자가 있는 피보험자가 담배와 술을 1년 이상 끊으면 보험료를 얼마나 깎아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만한 수준의 자료를 쌓아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료 정보와 관련한 빅데이터를 보유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보험업계에 대한 자료 제공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금융공공기관 등에 갖고 있는 개인정보를 풀어 ‘빅데이터 금융’을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을 내놨지만 국회 등 벽에 가로막혀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병원에 축적된 정보를 보험사에 넘기기 시작하면 병원과 보험사가 결합한 미국식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험상품을 한 번 내놓으려면 체계적이고 방대한 수준의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보험 규제를 풀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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