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자동차 협상’으로 불리며 지난 2012년 발효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대미 자동차 수출 효과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국책연구원의 분석보고서가 나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혜택을 위해 멕시코 등지에 생산라인을 세운 일본·유럽(EU) 업체 등과 경쟁 심화로 미국 시장 판매가 줄어든데다 고비용·저생산 구조에 시달리는 국내 업체들이 현지생산을 늘린 탓이다. 한미 FTA 효과의 조기 종료와 관련해 일자리의 해외 이탈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7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산업연구원의 ‘산업별 FTA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미 FTA 효과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주한 이 보고서는 “(한미 FTA 발효 5년째인) 2016년 자동차(승용차) 무관세가 이뤄졌지만 (수출은 전년 대비) 10% 넘게 감소하면서 대미 자동차 흑자 규모가 줄고 있다”며 “유럽과 일본 업체들이 NAFTA 현지 투자로 무관세 혜택을 누리면서 한국의 FTA 특혜 효과도 제한적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2년 발효된 한미 FTA는 한국은 대미 흑자의 약 30%를 담당하는 자동차시장의 관세를 철폐하는 데 힘을 쏟고 미국은 농산물과 서비스시장을 여는 데 주력한 협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한국은 FTA에 따른 규제 개선 등의 효과를 누리며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2012년 106억달러에서 2015년 176억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한미 FTA는 2.5%로 유지되던 자동차 관세가 0% 되는 시기를 2016년으로 정했다. 하지만 관세 철폐로 수출 특혜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2016년에 대미 수출은 156억달러로 꺾여 지난해 147억달러까지 줄었다. 2015년 106만대를 웃돌았던 미국 수출 대수도 지난해 84만대로 급락한 상태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우리 기업이 시장 맞춤형 공략을 못한 점과 현지생산을 늘린 점, 일본 기업들이 NAFTA를 이용해 우리 특혜 효과를 상쇄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효과가 반감된 주요 요인이 현지시장 판매 감소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제유가가 한때 20달러 이하로 떨어지던 2015년을 기점으로 현지에서 대형 차량인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수요가 급증했다. 하지만 현대차(005380)와 기아차(000270)는 엘란트라(아반떼)와 중형세단 소나타에 주력, SUV 라인업을 다양화하지 못했다. 결국 현지 판매량이 2016년 142만대 수준에서 지난해 127만대로 15만대가량 줄었다. 이에 따라 80만대를 넘었던 현대기아차의 대미 수출도 지난해 59만대로 축소됐다.
국내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 생산을 늘리는 쪽으로 체질 개선을 한 점도 한미 FTA 효과를 반감시켰다. 이는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멕시코 등에 진출해 미국 수출 차량에 대한 무관세 혜택을 누린 데 따른 자구책 성격이 강하다. 보고서는 멕시코와 캐나다의 대미 자동차 수출 대수가 2011년 278만대에서 2016년 339만대로 늘어 미국의 전체 차 수입 가운데 51.7%까지 늘었다고 분석했다. 현대기아차도 다르지 않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FTA가 발효된 이듬해인 2013년 생산능력을 30만대에서 37만대로 증설했다. 기아차는 미국 조지아 공장 생산능력을 2012년 34만대로 늘렸고 2016년은 4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멕시코 페스케리아 공장을 완공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지난해 57만대를 생산했다. 그 결과 현지 생산 비중이 전년보다 4%포인트 증가한 45%까지 올랐다. 멕시코의 생산 대수도 같은 기간 2만여대에서 10만대 이상으로 5배 뛰었다. 반면 이 기간 국내 생산은 74만여대에서 59만여대로 15만대가량 줄었다. 수출 대신 현지생산을 늘리면서 한미 FTA 효과가 빠르게 반감된 것이다.
현지생산으로 눈을 돌리면서 일자리도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미국 공장이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HPV)은 14시간 수준. 국내(약 26시간)보다 두 배가량 생산성이 높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현지생산과 판매량 증가로 해외 인력 비중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2년 6,200여명이던 현대차 미국법인 인력은 2016년 1만여명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인력 가운데 해외 인력 비율은 현대차는 2012년 39%에서 2016년 43.5%, 기아차는 30.1%에서 33.9% 늘었다.
더 큰 우려는 한미 FTA 효과의 불씨를 살리기 어려운 쪽으로 대외환경이 바뀌고 있는 점이다. 한국은 법인세와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는데 미국은 법인세를 낮췄다. 특히 최근 수입차에 대한 관세 폭탄(25%)까지 거론하며 현지생산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백홍기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은 “자동차산업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살아남게 하려면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노사 문제 등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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