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익 개선 전망과 환율 안정을 바탕으로 국내 증시에 외국인의 매수세가 다시 유입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조1,755억원을 순매도했던 만큼 며칠간의 매수세를 보고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반도체 등 정보기술(IT)주들에 대한 매수 강도가 강해진 것과 관련해 시장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쪽에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다.
4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36%(8.8포인트) 오른 2,447.76에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163억원을 순매수하는 등 3일 연속 매수세를 이어갔다. 지난달 31일부터 3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1조2,071억원을 순매수했다. 올 들어 팔아치운 금액의 절반가량을 되사들인 셈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달러 강세 조짐이 나타난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합해 1조1,992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1월에만 1조9,756억원을 순매수했을 뿐 2월 1조5,000억원, 3월 7,400억원, 4월 1조376억원, 5월 8,115억원 등 매달 순매도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 주식을 팔던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선 것에는 환율안정 전망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글로벌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지수는 지난달 29일 올해 들어 최고점인 94.78을 찍은 후 이달 1일 94.16으로 소폭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공개 이후 6월 FOMC에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사라져 달러 강세를 조성했던 환경이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유겸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는 달러 강세를 조성했던 환경이 해소되고 있다고 판단한다”며 “미국 시장 금리 급등세가 진정되며 미국의 실질금리도 하락해 달러화 자산에 대한 매력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전 거래일 대비 3원10전 내린 1,071원90전에 마감하면서 달러 약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1,070원50전에 개장한 외환시장은 2월 미국 인플레이션 쇼크에 1,090원을 넘어서고 지난달에도 1,085원40전까지 올랐지만 다시 1,070원선으로 내려오면서 연초 수준을 회복한 상황이다. 더욱이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등이 나올 경우 원화 가치는 더 오를 수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원화 가치가 오른다면 시세차익에 더해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수익을 함께 얻을 수 있기 때문 국내 증시에 투자할 유인이 커진다.
국내 기업 이익 개선도 외국인의 매수세를 부르고 있다. 김 연구원은 “코스피 연간 이익전망치가 4월까지의 하향 국면을 종료하고 5월부터 개선 흐름이 재개됐다”며 “미국 제조업 신규 주문 반등과 중국의 수입 증가율이 상승세로 전환돼 향후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을 중심으로 이익 개선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업 이익 개선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는 평가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코스피의 연초 이후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3% 감소한 데 비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각각 4.6%, 14.7% 증가했다.
기업 이익 개선세가 IT에 집중되며 외국인의 관심은 IT 대형주에 꽂혔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1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증가분이 각각 35%와 74%였던 점과 비교해 주가 상승률은 12%와 60%에 불과했다”며 “IT 내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기 민감주 주요 업종을 덧붙이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IT 업종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도 참고할 요소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 대한 가장 많은 순매수 흐름을 보인 5월21일부터 6월1일까지 2주 동안 삼성전자(1조2,738억원), 삼성전기(2,143억원), SK하이닉스(1,925억원) 등을 가장 많이 사들였다.
다만 외국인의 국내 증시 투자에 대해서는 완전한 귀환으로 보기 힘들며 신흥국 중 높은 밸류에이션에 따른 일시적 수혜라는 진단도 나온다. 메리츠종금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5월 마지막주 신흥국 펀드에서는 24조2,000억 달러의 자금 순유출이 발생했다. 이는 터키와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신흥국 경제위기가 부각되면서 6주 연속 자금 이탈이 발생한 것이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신흥국 펀드 자금이 유출되는 가운데 외국인투자가가 한국 증시에서 2주 연속 순매수했다”며 “본격적인 외국인의 귀환보다는 순환매 또는 선별적 주식 매수의 결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신흥국 전체에 대한 자금 유출세가 진정되는 신호가 발견되지 않아 한국을 특정한 외국인 투자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인을 제치고 올해 국내 증시의 ‘큰손’으로 활동해온 개인은 최근 매도세를 강화하는 흐름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918억원을 순매도하면서 지난 2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보였다. 최근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12조원을 넘어서는 등 급증해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이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개인이 외국인에게 시장 수급을 뺏길 경우 남북 평화 무드에 급상승한 경제 협력주의 급락이 우려된다. 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1차 남북 정상회담 하루 전인 4월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대표 경협 수혜주로 꼽히는 현대건설(000720)에만 6,540억원을 투자했다. 경협주에 대해 개인이 매도로 태세 전환할 경우 그만큼 시장의 충격도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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