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땅’ 인도네시아 자와섬의 자와바라트주(州)와 자와텡가주 경계선에 위치한 소도시 치르본. 인천에서 하늘길 7시간과 땅길 4시간을 연거푸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지평선을 뚫고 서 있는 굴뚝을 맞닥뜨렸다. 단조로울 정도로 평평한 주변 풍광을 압도하는 굴뚝 아래로 차를 몰고 가자 인도네시아 전력시장의 ‘심장부’로 불리는 치르본 석탄화력발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치르본 석탄발전소는 대한민국 전력사(史)에 한 획을 그은 사업이다. 2005년 일본의 종합상사 마루베니사(社)가 중부발전에 사업을 제안한 게 시초였다. 2006년 중부가 7,000만달러(한화 700억원) 지분 투자를 결정하면서 한국형 표준화력의 수출 모델 1호로 이름을 올렸다. 2012년 상업운전 개시 이후 지금까지 중부가 회수한 금액은 800억원. 투자액 대비 104%에 달한다. 2041년까지 예상되는 순수 사업이익만 4,100억원이고, 기술 지원비 명목으로 매년 20억원의 돈도 챙길 만큼 알짜 사업이다.
치르본 사업은 중부발전의 인도네시아 전력인프라 사업의 교두보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이후 중부는 인도네시아에서 왐푸·탕가무스 수력 발전 사업을 따냈고, 4억달러 규모의 시보르파 수력발전 사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두산중공업도 이를 발판 삼아 주요 기자재인 터빈부터 발전소 설계·시공을 아우르는 5억4,000만달러 규모의 EPC 공사를 따냈다. 전력생산에 필요한 연료도 우리 기업이 덴다. 지분 20%를 투자한 삼탄은 자사의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인 인도네시아 파시르 광산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고 있다. 중부가 맨땅에서 일궈낸 해외시장 진출이 핵심 기자재인 터빈부터 발전소의 건설과 운영, 유지보수, 사업까지 아우르는 ‘패키지’ 수출로 이어진 셈이다.
박영규 인도네시아 시보르파일렉트릭파워 법인장은 “IPP는 사업 하나 성공시키면 법률과 금융, 건설 등 서비스뿐만 아니라 기자재 등 제조업까지도 총망라할 수 있는 ‘패키지 수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한국·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에서 치르본 사업을 언급하기도 했다.
뚫리는가 싶던 석탄화력 발전의 수출길은 여전히 꽉 막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근 치르본 2호기 사업이다. 치르본 2호기 사업은 1호기 사업에 이어 중부발전이 30%의 지분을 투자하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부채감축 정책 탓에 지분이 10%로 쪼그라들었다. 빈자리는 일본의 전력공기업 제라가 메웠다. 터빈은 일본 도시바, 나머지 기자재는 중국 제품이 들어갈 계획이다. 최영일 치르본파워서비스(CPS) 사장은 “8억5,000만달러 치르본 1호기 사업에서 EPC로 우리가 5억달러 가져왔는데, 옆 부지에서 지반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치레본 2호기 사업을 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냐”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또 있다. 미세먼지 등을 이유로 지난해 국내서 탈(脫)석탄 정책이 시동을 건 것. 어렵게 개발해낸 초초임계압(USC) 기술의 설 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USC는 온실가스 감축 기조에서도 개발도상국에 화력발전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기술로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만 보유하고 있다. 천진수 치르본일렉트릭파워(CEP) 기술이사는 “인도네시아 IPP 시장에서 중국은 정부 보증도 필요 없다며 사업 쓸어가고 있고, 일본은 금융조달 능력 탁월해서 알짜 사업들 가져간다”며 “우리 발전 공기업도 디벨로퍼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고, 공기업이라는 크레딧도 있는 만큼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신남방 정책 기조에 따라 최근 민관합동 지원단을 발족시켰다”며 “앞으로 적극적으로 동남아시아의 민자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수주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치르본=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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