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과 관련해 이란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가(家)가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ISD)의 국제중재에서 사실상 패소했다.
7일 금융위원회 등 정부에 따르면 지난 6일 중재판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란 다야니의 청구금액 935억원 중 약 730억원을 다야니 측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다야니는 엔텍합이 지난 2010∼2011년 대우일렉을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2015년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2010년 4월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은 대우일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엔텍합을 선정하고 578억원의 계약금에 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엔텍합이 이란 제재 여파로 대금지급기일을 넘기자 계약을 해지했다. 엔텍합은 2011년 6월 채권단을 상대로 매각절차 진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자 ISD를 제기했다.
해외투자가가 우리 정부에 ISD를 제기한 것은 다야니를 비롯해 론스타·하노칼이 있었고 최근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까지 네 차례다. 이 가운데 하노칼은 ISD를 취하하면서 우리 정부가 명백히 승소했고 론스타는 결론을 기다리고 있으나 우리 정부에 유리한 분위기다.
가장 골칫거리는 최근 제기된 엘리엇매니저먼트의 소송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문제 삼아 역대 가장 큰 규모인 7,100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현대자동차 그룹의 지배구조에도 관여하고 있다. 엘리엇이 국민연금 등 국가기관의 개입을 쟁점화하는 미묘한 시점에 다야니가 제기한 ISD 판결에서 정부가 진 것이다. 네 개의 사례 중 론스타와 하노칼은 한국 정부와 면세협정을 맺은 제3국을 통해 투자한 뒤 세금을 못 내겠다고 주장한 점이 유사하다.
반면 다야니는 국내 법원이 다야니의 입장을 일부 받아줬다는 점에서 하노칼보다는 엘리엇의 사례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10월 캠코 등 채권단이 계약금을 반환하고 엔텍합은 갖고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외상금 320억원을 돌려주라고 조정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를 거부했으며, 엔텍합이 제기한 우선협상대상자 임시 지위 가처분 소송에서 채권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엔텍합은 조정안을 근거로 ISD에 올려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권고였지만 한국 법원에서 인정한 부분을 자산관리공사가 이행하지 않은 점은 ISD에서 논쟁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ISD를 제기한 근거로 2대 주주인 국민연금 관련 인사들이 국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들었다. 법원은 합병의 결과로 주주가 손해 봤다는 주장은 기각했지만 엘리엇은 일단 ISD를 제기하는 빌미로 활용한 것이다.
다만 다야니와 엘리엇의 ISD는 차이점도 있다. 이란의 투자자인 다야니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통하지 않고 유엔 산하인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ISD를 제기했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를 통한 ISD 제기는 상대적으로 절차가 불투명하고 당사자의 의사 위주로 결정돼 예측이 어렵다. 정부 관계자는 “이란은 세계은행 가입국가가 아니어서 유엔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서 “다야니와 엘리엇의 사례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