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이번 정부를 이끌어가는 수뇌부들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실세 장관들은 앞다퉈 확대재정에 의한 빈곤계층 지원을 주장했다. 산업계·소상공인업계에서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부작용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외면한 채 재정의 적극적 역할에 대해 서로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다. 그 결론은 예산 확대로 귀결돼 내년 예산은 애초 계획했던 453조원(올해 대비 5.7% 증가)을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미 지난 1년간 소득주도 성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랏돈을 풀더라도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곳에 쓰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식이 반복되면 경제도, 재정도 모두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예산 확대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세수만 보더라도 내년 이후까지 풍년이 지속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앞으로 산업 구조조정이나 경기 둔화에 따라 재정이 더 필요할 수 있다”며 “초과세수는 국채 상환에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넉넉한 재정을 아껴두라는 얘기다.
재정에 기대 소비를 활성화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의 한시책보다는 민간 스스로 수요(소비)를 늘려 공급(생산)까지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고 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내수 방파제를 쌓기 위해 가장 서둘러야 할 분야로는 일자리 확대가 꼽힌다. 이번 정부도 ‘일자리’를 제1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지난 2~4월 3개월 연속 취업자 증가 폭이 10만명대에 머무는 등 결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실패 논란을 부른 ‘1·4분기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소득,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라는 결과도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소득이 급감한 탓이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없는 최저임금 인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기업의 활력을 다시 찾아주고 새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소득주도 성장도 지속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육개혁과 노후대책도 내수 확대를 위한 중장기 과제로 꼽힌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가계소비지출 중 사교육비 비중(도시 2인 이상)은 2005년 10.6%에서 2016년 19.2%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부실한 공교육에 갈수록 복잡해지는 대학 입시, 견고한 학벌 등 교육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교육비 부담은 줄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여성 1인 평균 출생아수)로 출산 절벽이 가까워지면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올해 14.3%에서 오는 2027년 21.1%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행은 고령화에 따라 가계저축률(가계가 저축한 돈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값)이 올해 7.3%에서 2027년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가뜩이나 노인 빈곤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령화는 내수의 최대 악재로 꼽혔다.
2001년 이후 17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는 관광수지 개선도 숙제다. 전문가들은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콘텐츠 개선과 더불어 관광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한국형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이 탄생할 수 있도록 서비스 분야 규제를 풀어 기존 사업자의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변정우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국가 어젠다의 우선순위에 관광·레저 분야를 포함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진혁기자 나윤석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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