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 결정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조만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한미간 금리역전 폭이 확대되면서 금융 불안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경기 둔화 우려에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준은 12∼13일(현지시간)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1.75∼2.00%로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 경우 3월 미 금리 인상으로 양국 정책금리가 역전된 데 이어 이제는 차이가 0.50%포인트로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한미간 금리역전 폭이 커지더라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대거 탈출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나 대외건전성 등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실제 3월 역전 후에도 자금이 빠져나가는 모습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외국인 자금은 4월 14억달러 유출됐다가 5월엔 채권 중심으로 27억달러 유입됐다.
문제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내외금리 차가 더 커지고 금리 격차 기간도 길어질 경우다. 특히 최근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 일부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신흥국 금융 불안이 더 고조될 경우 한국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탈출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한은도 2013년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신흥국 긴축발작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연준이 이번 FOMC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지가 관심사다. 연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동시에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신호를 내놓을 경우 신흥국 시장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8일 국제경제학회 발표에서 “한미 금리 차 때문에 자본 유출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지만 투자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돈을 빼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한국에서 자본이 더 많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은은 한 달 후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한다. 지난달 만장일치로 동결 결정이 나온 점을 감안할 경우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경기 회복세와 물가 상승세, 일자리 증가 폭 등이 금리를 올리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민간연구기관에서는 한국경제가 이미 경기 침체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등 대외여건만 놓고 보면 금리 인상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처지다. 한은이 7월과 8월을 넘기고 미국이 9월에 또 올릴 경우 금리 역전 폭이 0.75%포인트로 커진다. 또 나중에 경기가 더 나빠질 때를 대비해도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려놔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이래저래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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