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4회까지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신흥국의 ‘긴축발작’ 우려와 함께 국내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우려했던 ‘머니무브’가 국내 고액자산가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시장으로 국내 자금은 1,957억원이 유입된 반면 ‘6월 위기설’이 부각한 신흥시장은 중국을 포함해 2,692억원이 빠져나왔다. 신흥국이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리스크에 노출되며 미국이 안전투자처로 부상했다.
1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에서 미국 시장으로 2,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다. 1년간은 2,973억원이 몰려 단일 시장으로는 베트남(9,894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자금을 쓸어담았다. 이와 달리 올 들어 신흥국에서는 중국의 1,094억원을 비롯해 브릭스펀드에서 1,315억원이 빠져나갔다. 특히 헤알화 급락으로 브라질 시장은 자금 유출이 도드라지며 이달 들어서만 163억원이 유출됐다.
브라질·베트남 등 신흥국으로 몰렸던 자금들이 미국으로 흘러간 것은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빠른데다 3회에서 4회로 늘어난 인상횟수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 선행지표 중 하나인 실업률이 3.8%로 지난 2000년 4월 이후 1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점도 자금 유입에 모멘텀으로 작용했다. 시장에서는 1997년 IMF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경제위기 10년 주기설’까지 겹쳐지면서 지역별 투자 중 미국 시장만이 안전투자처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미국 금리 인상이 신흥국 긴축발작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신흥국은 경기 부진으로 불안감을 키우면서 브라질·아르헨티나·이탈리아 등 신흥국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별 펀드 수익률 역시 북미 펀드의 경우 1년 30%를 웃돌며 수익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KODEX합성-미국 바이오테크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은 1년 수익률 31.81%, 연초 이후로도 13.42%, KBSTAR미국원유생산기업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은 1년 22.98%, AB미국그로스증권투자신탁이 19.05%에 달한다. 북미 펀드 80여개 중 1년 수익률이 20%에 육박하거나 이상인 펀드가 25개에 이른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펀드 역시 3개에 그친데다 그 폭도 3%대로 크지 않았다. 반면 브라질 펀드는 시중에 판매되는 22개 중 연초 이후 수익률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데다 그 폭 역시 멀티에셋삼바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은 -17%로 큰 손실을 기록했다. 손실폭이 가장 적은 것이 KB브라질증권자투자신탁이 -6%대였고 나머지는 모두 13%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중남미 펀드 역시 시판되는 11종 중 IBK다보스글로벌고배당증권자투자신탁(4%)만 제외하고 연초 이후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우울한 성적표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으로 자금 쏠림 현상이 보다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국제금융센터(KCIF)의 ‘글로벌 펀드자금, 유럽발 불안이 가세하며 북미로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지역으로의 채권자금이 9주 연속 지속된 반면 그 외 지역에서는 순유출이 기록됐다. 미국 중앙은행의 경기 해석을 읽을 수 있는 베이지북에도 ‘미국 경기 대부분 지역에서 완만하게 확장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 연준 소속 경제학자들의 보고서에서도 미국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신흥국 국내총생산(GDP)이 3년 후 0.8% 감소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EM)지수는 지난달 31일 1120.71로 1월 말 찍었던 고점 대비 12% 하락했다. 선진국의 증시 흐름을 보여주는 MSCI세계지수는 지난달 말 2092.92로 연초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지난해 말 수준으로 내려갔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블룸버그가 발표한 신흥국 주식시장의 외국인 자금을 봐도 자금을 꾸준하게 끌어모았던 대만의 올해 5월 말 기준 순유출 규모가 1억6,900만달러에서 6억100만달러로 확대됐으며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액수가 11억달러를 넘었던 베트남도 최근 순유출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흥국의 경우 6월 위기가 10년 주기설과 맞불려 불거진 만큼 단기적일지라도 자금 유출은 이어질 것”이라며 “이 자금이 미국 등 안전 지역으로 몰리는 현상은 추가 금리 인상 분위기와 맞물려 가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신흥국의 환율 급락 등으로 신흥국 펀드에 투자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운용업계 고위관계자는 “현재 브라질을 중심으로 환율 급락 등 불안 징표들이 감지되지만 장기적으로 보기에는 환율이 떨어진 시점이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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