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10시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 TV 앞. 시민 200여명의 눈이 일제히 TV를 향해 있었다. 마침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장면이 생중계되자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30대 직장인 김선욱씨는 “회담의 성과를 떠나 북미 지도자가 손을 맞잡은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며 “평화를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이날 시민들은 수시로 TV와 스마트폰으로 회담 상황을 시청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탓에 악화일로로 치닫던 북미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져버렸던 과거 행태를 볼 때 정상회담 같은 ‘이벤트’보다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는 신중론도 만만찮았다.
직장인 신현성(37)씨는 “국제 사회와 단절됐던 북한이 문을 연 만큼 앞으로 더 이상 고립되지 않도록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며 “남북 평화와 상호 번영의 길이 진짜 열릴 수 있도록 정부 당국자들이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6·25 참전용사인 90대 이모씨는 “이번 회담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북한은 여전히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말로 핵을 폐기하고 개방의 길로 나서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경의선을 타고 서울역에 왔다는 박상유(40)씨는 “초등학교 때 반공 포스터를 보면서 ‘북한은 나쁜 나라, 미국은 좋은 나라’라고 배웠었는데 30년 만에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며 “이제는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의 진전이 남북관계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공무원 서민선(44)씨는 “김 위원장은 자신의 할아버지·아버지가 못한 일을, 트럼프 대통령은 전직 미국 대통령들이 못한 일을 해내고 있다”며 “북미 관계가 더 나아지면 한반도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미국 국적의 김모(32)씨는 “평소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지지해왔지만 사실 북한이 핵만 포기한다면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며 “김 위원장이 회담 전날 시티투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개방개혁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해외 기업들과 비즈니스를 많이 한다는 회사원 조모(36)씨는 “해외 출장 때마다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설명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며 반겼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정연일(30)씨는 “북미관계가 안정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남측의 앞선 기술력과 북측의 인력 및 천연자원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며 “남북 교류가 본격화되면 우리 영토가 더 넓어져 한반도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점심시간에는 햄버거 가게들이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으며 협상하겠다”는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됐던 것이다. 서울 종로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정지만(32)씨는 “격의 없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햄버거를 먹듯 순탄하게 회담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햄버거를 먹으러 왔다”고 말했다.
/진동영·신다은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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