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최고 승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룸버그통신 등 서방 언론과 베이징 외교가를 중심으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중국의 의도대로 흘러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최대 승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 주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미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잠정중단 가능성을 언급하자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 방안으로 시종일관 주장해온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과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접근법이 옳았다며 대북제재 해제의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다. 중국 일각에서는 ‘차이나 패싱론(중국 배제)’을 불식시켰던 지난달 다롄 북중 2차 정상회동이 결과적으로 중국에는 ‘신의 한 수’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홍콩 명보는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북한이 일종의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인정하고 북미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훈련을 중단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북한과 중국에 거대한 외교적 선물을 안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해온 북한과 중국의 오랜 요구에 트럼프 대통령이 양보한 것이라는 의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는 상징적 수준에 그쳤지만 북한의 가장 친한 동맹국이자 가장 큰 교역 파트너인 중국의 역할이 강조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이번 싱가포르 협상 테이블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이 큰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도 “한반도 이슈는 현재로서는 중국이 희망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면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역할은 한층 더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미회담을 앞두고 북중 정상이 베이징과 다롄 등에서 합의한 전략전술적 협동 공조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무산 위기에 놓였던 북미 정상회담의 원인 중 하나로 중국 배후론을 거론하며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다롄 2차 회동에 대해 “기분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화를 부른 다롄 회동에서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은 전략전술적 공조체제를 재확인했고 중국은 선뜻 리커창 총리가 타는 에어차이나 전용기를 북한에 내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중국이 북미회담에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는 최소로 줄이면서도 북중 밀착관계를 전 세계에 뚜렷이 각인시키고 그토록 원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가능성도 얻어낸 셈이다.
당장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미국이 한국과의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중국이 주장해온 쌍중단 요구가 이뤄지는 것이자 한반도 문제가 한발 더 진전하는 것”이라며 중국 역할론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도 “중국이 제기한 쌍궤병행과 쌍중단 정책은 현실적이며 실행력이 크다”면서 “현재 한반도 정세는 쌍궤병행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는 한발 더 나아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도 조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안보리에서 통과된 결의에는 북한이 결의를 이행하거나 준수하는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제재 조치를 조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이는 관련 제재를 중단하거나 해제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1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논의할 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종전 선언, 비핵화 검증, 평화협정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대북제재 해제 이슈도 거론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러시아 크렘린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월드컵 개막식 참석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14일 회담할 예정이라고 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의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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