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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의 예(藝)-<65>송수남 '여름나무'] 헤아릴 길 없는 수묵의 기세..하늘까지 닿을 듯 올곧구나

송수남 ‘여름나무’ 2000년작, 패널에 붙인 한지에 수묵화, 147x210.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봄이 꽃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나무의 계절이다. 여름 나무는 큰 가지 뻗고 울창한 잎 덮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마을의 터줏대감 같은 느티나무는 동네 사람들의 평안을 빌어주는 믿음직한 존재였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고 나무 그늘을 놀이터 삼아 웃고 떠드는 모습은 이제 옛이야기, 시골에서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도시의 나무는 주로 가로수다. 가수 이용은 1982년 곡 ‘서울’에서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라고 노래했더랬다. 하지만 지금 서울 사대문 안의 대세는 ‘이팝나무’였음이 막 떠나버린 지난 봄의 흰 꽃 무더기를 통해 새삼 각인됐다. 특히 청계천로를 따라 즐비한 이팝나무는 꽃 모양이 그릇 소복하게 담은 하얀 쌀밥 같다고 해서 ‘이밥’이라 부르던 것이 그대로 나무 이름이 됐다고 전한다. 그리스어 학명도 눈(雪)과 꽃의 합성어(Chionanthus)이니 하얗고 소담스런 그 꽃의 자태는 동서양 누구에게나 탐스럽게 보였던 모양이다.

숲속 둥치 굵은 나무 우러러보듯

먹의 옅음·짙음에 따라 원근 표현

종이 번짐 어우러져 깊이감 더해

이런저런 나무가 떠오르는 것은 남천(南天) 송수남(1938~2013)의 ‘여름나무’ 때문이다. 커다란 붓에 질펀한 먹을 묻혀 힘차게 죽죽 그은 선이 시원하다. 제목을 듣지 않았더라면 ‘폭포’ 혹은 ‘여름 장마’를 떠올렸으려나. 하지만 거침없는 필치가 둥치 굵은 여름 나무의 기세를 꼭 닮았다. 초록빛 눈부신 색 없이도 무성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다. 그저 먹만으로, 단지 선만으로 이뤄진 단순한 형태지만 보는 이는 어느새 숲 한가운데에 놓이고 만다. 먹의 옅음과 짙음에 따라 멀리 있는 나무와 가까이 선 나무가 자리를 달리한다. 먹과 물의 배합이 농담을 변주하고, 그것이 종이와 만나 이루는 번짐과 겹침이 깊이감과 공간감을 이룬다. 이쯤 빠져들면 숲 사이로 난 두 갈래 길도 보인다. 나무 중간에서 화면이 딱 잘리는 바람에 그 치솟은 기세가 천장을 뚫었는지 하늘까지 닿았는지 알 길이 없다. 무한한 상상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굳이 비슷한 나무를 찾자면 나무줄기에 세로로 갈라진 골이 있는 회화나무가 가깝겠다. 지금은 천원권 지폐 뒷면에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있지만 구(舊)권에는 퇴계 이황을 상징하는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 도산서원 안뜰을 내려다보고 선 큰 나무가 바로 회화나무였다. 회화나무 혹은 홰나무를 뜻하는 괴(槐) 자가 나무 목(木)자와 귀신 귀(鬼)자를 합친 글자라 집에 심어두면 잡귀를 물리친다고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에는 수백 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있었다.

송수남 ‘산과 구름I’ 1987년작.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런 나무 저런 나무를 끌어들여 보지만 정작 화가에게는 무슨 나무인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린 나무는 먹과 물과 종이라는 재료만으로 이뤄낸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나무였으니 말이다. 멋 부리지 않은 간결한 화면으로 장중한 울림을 그려낸 송수남은 “수묵은 재료가 가진 물질의 특성이 만나 이뤄지는 하나의 자연적 현상이자 조형의 순수한 언어”라고 했고 “바탕 위에 색채를 덧입히는 서양화와 달리 물질과 물질의 관계이자 그들의 대등한 만남”이라고 했다. 화가가 2000년에 그린 이 작품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덕수궁미술관에서 한창인 ‘내가 사랑한 미술관’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화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14년 5월 유족과 남천추모사업회가 이 그림을 포함한 30여 점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수묵 매력에 빠져 서양화서 ‘전과’

한국적 멋스러움 찾아 붓질에 몰입

말년엔 어둠 벗어나 화려함 꽃피워

예향인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송수남은 어릴 적부터 정지용의 시 ‘난초’를 자주 읊조렸다. “난초닢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닢은 엷은 안개와 꽃이오다/ 난초닢은 한밤에 여는 다문 입술이 있다/ 난초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눕다”라는 구절을 유독 진하게 가슴에 아로새겼다. 먹 냄새 자욱한 할아버지 방의 기억 때문인지 고향 뒷산의 솔밭의 추억 때문인지 그는 전쟁의 상흔에서도 예술에 심취했다. 원래 전공은 서양화였다.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군복무 후 4학년으로 복학한 1962년, 돌연 동양화과로 전과했다. 왜였냐고 물으니 한하운의 시 ‘전라도 길’에 감명받아 그랬다고 했다. “가슴 속 깊이 잠자던 고향의 모습과 그에 대한 뜨거운 애정, 비장감이 힘차게 살아나옴을 느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먹이 갖는 심오한 검은 마력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송수남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평생을 바쳤다.

송수남 ‘오늘과 어제1’ 1991년작.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젊은 시절인 1960년대 작품은 한국적 소재인 수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구현할지를 모색하는 과정이었고 자유로운 붓질의 추상작업이 주를 이룬다. 일찍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도·미국 등에서 전시를 열었고 특히 1975년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의 초대를 받아 개인전을 연 것은 의미심장한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수묵에 담채뿐 아니라 강렬한 색채를 스미고 번지는 기법으로 접목시키는 등 파격적인 방식으로 수묵 산수화를 펼쳐냈다. 전통 준법을 응용하기도 하고 주름을 잡아 산세를 그리기도 했다. 이른바 ‘남천산수’는 현실 풍경도 아니고 이상적인 관념 풍경도 아닌 그 만의 색깔을 냈다. 1980년대에는 ‘수묵화운동’을 주도했다. 전통 한국화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중국·일본과 구별되는 한국화 만의 새로운 돌파구를 ‘수묵’에서 찾자는 주장이었다. 그에게 먹은 색의 시작이요, 끝이며, 가장 우주적이고 영원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수묵은/ 산 속이나 바다 속 깊이 감추어 있어/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수묵은/ 그것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어둠일 뿐이며/ 수묵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수묵은 빛이 된다.”

남천이 쓴 수묵예찬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먹과 물을 갖고 놀듯 이리저리 굴리는 ‘붓의 놀림’ 연작을 선보였다. 서양그림으로 치자면 액션페인팅처럼 자유롭게 먹을 흩뿌리기도 하고 진득하게 스미게도 하고, 문자 추상도 시도하고 여백의 미도 만끽했다.

1991년작 ‘오늘과 어제’는 반복적으로 그은 수직의 먹선이 서가에 조심스럽게 꽂은 선비의 책을 떠올리게 한다. 붓이 머금은 물기에 따라 먹은 농담을 달리하고 때로는 짙고 뻑뻑한 붓질로 때로는 질퍽하고 은은한 색으로 종이에 스몄다. 한 획 한 획이 작가의 호흡이었으리라. 숨까지 참아가며 곧은 선을 그었고 반복적으로 내리그은 선들은 균질하다. 도식적으로 딱딱 맞춘 게 아니라 엇비슷해서 중간중간에 벌어진 틈이 있다. 숨통 열린 자리다. 자 없이도 수평의 선을 맞추고 면을 채워갔다. 인생사와 뭣이 다르랴.

송수남 ‘붓의 놀림’ 2008년작.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2008년작 ‘붓의 놀림’의 경우 쿡 찍어 휙 떨군 붓의 움직임이 봉우리 치솟은 내금강을 보는 듯하다. 고개 떨군 능수버들 숲이라 볼 수도 있고, 연달아 터진 폭죽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화가의 붓놀림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가지고 논다.

그에게 붓질은 고됐을까 즐거웠을까. 그것은 노동이었을까 유희였을까. 말년의 남천은 꽃을, 그것도 알록달록 화사한 꽃을 즐겨 그렸다. 원로화가가 젊은 시절의 경향과는 사뭇 다른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는 일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어떤 말에든 고개 끄덕이는 이순(耳順·60세)을 지나 마음 내키는 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세상 이치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70세) 경지에 오른 화가들이 그렇다. 남천의 경우 평소에도 꽃을 무척 좋아했고 심지어 유언으로 자신의 장례식에 검은 상복 대신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와달라 했을 정도였다. 그는 홍익대 퇴직 이후 본격적으로 ‘화려한 꽃 그림’을 발표했다. 칠흑같은 먹의 어둠을 뚫고 피어난 꽃이라 그런지 백화만발 더없이 화려하다.

여름나무는 그 그림자가 유난히 진하고 길다. 세계인을 벅차게 했던 북미 정상회담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선거도 끝났다. 여름나무의 시원한 그림자가, 온 세상 다 끌어안을 듯 품 넓은 그런 그늘이 반가운 시절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송수남 ‘꽃’ 2013년작.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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