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 아파트에 입주한 주부 김 모씨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물을 한 번 내려서는 용변 찌꺼기가 말끔히 사라지질 않아 물을 한 차례 더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분양 당시 전 세대에 절수형 변기를 설치한다는 설명을 듣고 내심 수도요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두 번 물을 내려야 한다면 절수형 변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절수형 변기를 인증하는 ‘환경마크’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수돗물이 줄줄 새고 있다. 개정된 수도법에 따라 2014년부터 절수형 변기에 대한 기준은 한층 강화됐지만 오히려 현장에서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무늬만 절수형’ 변기들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수돗물의 절약과 효율적 이용을 위해 모든 신축 건물에 변기의 1회 물 사용량이 6ℓ 이하인 절수형 변기를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 산하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대변 시 물 사용량이 6ℓ 이하(소변용은 4ℓ 이하)이고, 세척 능력을 보여주는 볼·입자 배출 시험을 통과한 제품에 한해 ‘환경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아파트 건설회사나 건축주는 새 건물을 지을 때 환경마크 인증을 받은 제품을 절수형 변기로 보고 설치한다. 지난달 말 기준 환경마크의 인증을 받은 업체는 47곳, 제품 수는 407개에 달한다.
문제는 환경마크 인증을 받는 절수형 변기 가운데 상당수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 사용량이 6ℓ를 초과하거나 세척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제품들이 절수형 변기로 둔갑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는 기준을 충족한 절수형 변기만 써도 하루 평균 9억원 어치의 수돗물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무늬만 절수형’인 변기가 유통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먼저 기존 업체들의 꼼수 행위다. 절수형 변기를 새로 개발하는 대신 기존 변기 ‘관’의 크기만 줄여서 환경부의 인증을 받은 후 실제로 설치할 때는 밸브를 조작해서 물의 사용량을 늘리는 편법 행위가 만연돼 있다는 지적이다. 각 가정이나 공공기관에 설치된 절수형 변기에서 1회 사용수량이 기준치인 6ℓ를 훨씬 초과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이유다. 물 사용량 기준치를 충족하는 절수형 변기라 하더라도 세척 능력이 약해 물을 두 번 내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산하기관인 환경산업기술원 환경마크 인증의 변별력이 떨어지는데도 인증 기준 강화나 현장 단속과 같은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산하 기관이 인증한 제품들이 실제 기준을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지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면서 “하지만 법 개정 이후 4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볼 때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의 눈을 속이는 절수형 변기를 줄이려면 1회당 배출되는 물의 사용량을 변기에 표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마크에 물 사용량을 표기한 후 라벨 형태로 제품에 부착해 소비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과 중국 등에서는 절수형 변기에 물의 사용량을 각인된 제품을 쓰고 이를 라벨로 붙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환경부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은 절수형 변기를 비롯한 절수 설비에 단위 시간당 배출되는 물의 양 또는 1회당 배출되는 물의 양을 표시하도록 ‘수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주승용 의원실의 관계자는 “현재 환경인증 마크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시중에 법을 위반하는 절수형 변기들이 유통되고 있어 개정 법안을 발의했다”면서 “하지만 환경부 측에서 물 사용량 표기보다는 효율 등급제를 포함해 다른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보여 법안 심사가 일단 보류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절수형 변기 인증과 관련해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등급제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국회와 업계의 지적 사항을 잘 반영해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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