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는 가운데 외국인투자자들이 원화채권은 사고 주식은 파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 주식시장에서는 매도 속도를 높이면서 외부 변수와 국내 기업의 실적 중심으로 대응에 나선 반면 채권은 한국과 미국 기준금리 역전에도 불구하고 매수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례적인 시장 차별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거시와 미시를 구분해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식시장에서는 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이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 우려에 매도로 대응하는 반면 위기를 맞고 있는 신흥국과 달리 한국시장의 거시 건전성이 우수하다는 평가에 채권시장에서는 매수세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금융시장 특징 중 하나는 환율이 급격하게 올라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안 올라간다는 점은 한국국채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22일 기준 이달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1,895억원을 순매도했다. 아직 미국 인플레이션 쇼크에 올해 들어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장 많았던 지난 2월(1조 5,611억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향후 5거래일 동안 역전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특히 외국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올린 직후인 14일부터 코스피 매도 속도를 올리면서 투자자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외국인은 14일부터 19일까지 4거래일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5,000억원 넘게 순매도했고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100포인트 넘게 급락하며 외국인 유출의 공포를 실감했다.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에 미뤄졌던 원화 가치 급락이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며 외국인 자금 유출의 도화선이 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22일 원·달러 환율은 1,107.4원에 마감했는데 이는 지난달 31일 종가인 1,077.7원과 비교했을 때 약 3% 올랐다. 올해 연초부터 5월 말까지 상승폭이 0.6%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원화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실제 원화 가치는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신흥국 가운데서도 매우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6월 들어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 약세 강도를 조사한 결과 신흥국 중에서 한국이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가 경제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금융지원까지 요청한 것을 고려하면 정상 국가 가운데서는 한국이 가장 빠르게 통화가치 하락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남한-북한 협력 기조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효과에 달러화 강세 흐름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원화 가치가 6월 들어 급락했다”며 “원화 가치의 급격한 변화는 4월 이후 유로화나 주요 신흥국 통화 약세에도 눌려있었던 약세 압력이 연준 통화정책회의를 계기로 표출된 탓”이라고 진단했다.
원화 가치 하락 국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외국인의 국내 금융시장 투 트랙 전략이다.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유가증권시장을 중심으로 매도 속도를 올리고 있지만 반대로 채권시장에서는 순매수세를 강화하고 있다. 24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 잔액 규모는 108조 9,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특히 외국인은 작년 국내 시장 증권-채권 동시 매수에서 올해 증권 매도-채권 매수로 태세를 전환했다. 이는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이 시장을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 빠져 나갈 것으로 예상했던 기존 전망과 달라진 흐름이다. 신흥국 가운데 높은 재정 건전성과 국내 금리 인상이 더뎌진 점이 외국인 채권 투자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아르헨티나·터키 등 신흥국 위기가 가중됐지만 한국은 다른 신흥국에 비해 재정 건전성이 뛰어나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상당하다”며 “국내 경기 불확실성에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을 미루는 상황에서 외국인의 원화 채권 투자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려를 낳고 있는 점은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대응이다. 올해 원화 약세에 더해 기업 이익 부진까지 우려돼 실적을 중시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국내 증시에 투자해야 할 요인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코스피 하락 국면에서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을 살펴보면 삼성전기(009150)(2,313억원), 아모레퍼시픽(090430)(1,343억원), 신세계(004170)(1,164억원) 등 실적 개선 종목이 상위를 차지했다. 반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2·4분기부터 하락세가 우려되는 삼성전자(005930)에 대해서 외국인은 이달에만 약 1조원 순매도하며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 속도가 진정돼 높아진 원·달러 환율로 주요 수업기출들의 이익 추정치가 상향 조정될 때까지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 당분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수급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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