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 간 논의됐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법인화 추진이 ‘중단’됨에 따라 미술관 측이 쇄신안을 포함한 운영혁신 계획안을 발표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6일 종로구 삼청동 서울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중기 운영혁신 계획’ 간담회를 열고 “3~5년 앞서 전시 기획을 수립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 높은 전문성을 추구할 것”이라며 “전시 수를 줄이고 학예분야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미술관 프로그램 전반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과천관·덕수궁관이 개최한 전시는 지난해 27건이었고, 올해는 총 24건이 열릴 예정이며 내년부터는 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미술관 측은 과천관과 서울관, 덕수궁관과 올해 말 개관 예정인 청주관의 4관을 통합 운영하는 ‘하나의 미술관(One Museum)’을 강조해 운영하며 근현대 한국미술사와 국제 미술을 동시에 통시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분야별 중기 혁신 계획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내년에 개관 50주년을 맞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과천관·덕수궁관의 3관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하는 ‘20세기 이후 한국미술:광장’전이 눈길을 끈다. 오는 2019년 10월 개막해 2020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1969년 경복궁에서 처음 문을 연 미술관 개관 50주년과 3·1운동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전시로 광장을 중심으로 한 독립의 외침, 1980년대 민주화 항쟁,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두루 아우르며 200여 작가의 500여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전시 이후에는 미국 순회전으로 이어지도록 추진 중이다.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혁신 방안은 △전시기획 시스템 공고화를 통한 전문성 강화 △주요 학예직 역량 신장과 외부 전문가 참여로 개방성 확대 △지역 공·사립 미술관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공성 제고 등이다. 외부 기관과의 공동 전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오는 7월 미국 미술관 큐레이터들과 팀을 꾸려 ‘한국 실험미술’의 조사연구를 시작한 후 국내 전시 뿐 아니라 2021년에는 미국 미술관 순회전을 목표로 잡았다. 소장품 개선을 위해서는 외부 전문인력을 적극 끌어들일 계획이다. 내부 학예직으로만 혁신구성된 1차 가치평가위원회를 근대·현대·국제·응용미술 4개 분야로 개편하고 관내 연구직뿐 아니라 100여 명에 이르는 외부 전문가들의 제안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작품수집에 참고한다. 2차 가격자문위원회는 외부전문가 3인 이상으로 구성하며, 3차 수집심의위원회에서 1, 2차 평가의견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서울관 ‘박스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명맥이 끊겼던 커미션 작업도 부활시킨다. 미국의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의 신작을 내년 하반기 이후 미술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예술가로 꼽힌 히토 슈타이얼에게는 한국적 맥락의 신작을 의뢰할 계획이다. 의욕적인 혁신안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오는 12월13일까지가 임기인 마리 관장의 추진안이 얼마나 유효할지에 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관련 예산과 인력 확보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 실행여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마리 관장은 올 초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연임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임기는 3년이다. 그간 관장들의 부침이 심했다. 지난 2008년 김윤수 전 관장이 임기 만료를 1년여 앞두고 해임돼 진보 성향 인물에 대한 ‘표적성 물갈이’ 논란이 있었고 이후 관장들이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 했으며 마리 관장 임명 전에는 2년 가까이 ‘관장 공석’ 상태였다. 이에 미술계 안팎에서는 ‘관장 공모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을 둘러싼 ‘법인화’ 논란은 1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정부 때 미술관의 특수법인화가 거론됐고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 중 유일하게 법인화 추진 우선대상기관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법인화 법률안은 국회를 넘지 못하고 번번이 폐기됐다. 미술관 측 관계자는 “문체부에서는 더 이상 미술관 법인화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최근 결정됐다”고 밝혔다. 기관의 전문성과 조직 효율성 제고를 표방하는 법인화 논란은 국립 미술관의 민간기관 전환을 골자로 했다. 그러나 미술관 권한의 핵심인 이사회의 이사 임면권을 문체부 장관이 갖는다는 등의 일부 규정의 불합리성과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국내 문화여건 등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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