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조선에서 가장 많이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과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세종대왕(1397~1450)이 이끈 조선은 21개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자랑한 전 세계의 ‘퍼스트무버(first mover)’였다. 세종은 재위 32년간 백성과 함께하는 ‘여민(與民)정신’을 바탕으로 혁신 리더십을 앞세워 과학기술의 꽃을 피웠다. 농업 생산량을 높이고 질병을 치료하며 자주국방의 기틀을 닦는 등 ‘시대정신’에 충실한 과학기술 혁신 리더였다.
하지만 세종 시대 이후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따라 과학기술을 천시하는 분위기로 우리나라는 결국 1·2차 산업혁명에서 완전히 뒤처졌다가 겨우 3차 산업혁명(인터넷 정보화 혁명)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4차 산업혁명(지능정보화 사회)에서 다시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이는 규모는 크지만 비효율적인 연구개발(R&D) 투자 풍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과기 R&D 투자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24%로 이슬라엘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과기 혁신역량은 2016년 5위에서 지난해 7위로 떨어졌고 4차 산업혁명 준비 정도는 세계 25위에 불과하다. 특히 정권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과 기구가 바뀌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결국 연구현장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될성부른’ 과제에만 집중해 혁신적 결과물을 내놓기보다 R&D 성공률(98%)만 높이는 ‘허장성세’식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9월19일)을 앞두고 장기적 안목에서 과감하고 혁신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편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제대 총장과 효성기술원장을 역임한 성창모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겸임교수는 “600여년이 지나 우리보다 오히려 중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세종대왕의 DNA를 더 잘 이어받고 있다”며 “국가적 과학기술 리더십으로 5년마다 바뀌는 게 아니라 10~20년간 꾸준히 장기 투자하고 연구자들도 혁신적 연구에 과감히 도전하는 풍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세종대왕 때 과학기술 발전이 농업 생산성과 백성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졌다”며 “대왕의 여민정신을 받들어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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