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는 이른바 ‘제로 마진 쿠폰’이라는 것이 있다. 경쟁은행의 고객을 뺏어올 때 쓰인다. 상대방의 고객을 끌어온다면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용인해주는 카드인 셈이다. 한정된 국내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은행들은 금리 전쟁을 벌인다. 내수 시장에서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이동통신사와 같이 은행 간 경쟁이라는 시장원리 속에서 고객들은 0.1%라도 유리한 금리를 받아낼 수 있다.
그런데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자의적으로 적용해 대출 이자를 부당하게 올려 받은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적발됐다. 경남·KEB하나·한국씨티은행 3곳에서 무려 1만2,000건이고 환급 규모는 27억원에 이른다. 대출자의 소득이나 담보를 빠뜨리거나 실제보다 적게 입력했다.
시장논리를 생각하면 썩 납득이 가지 않는 행태다. 연간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로 이익을 내는 은행들이 몇 억원의 이자이익을 더 내려고 조직적으로 조작을 했다는 것일까. 영업점을 경험한 다수의 금융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은행 같은 큰 조직에서 시스템으로 산출되는 대출금리를 고의적으로 만지는 범죄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해 신뢰를 먹고사는 은행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점이다. 혹여 업무상 실수였다고 해도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단순히 사과를 넘어 다시는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지난해에도 감사원의 감사 결과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오류로 47만명이 이자 16억원을 더 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에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코픽스 오류는 2012년에 이어 2015년 또다시 발생했고 최근에야 뒤늦게 시스템을 개선했다. 올해는 상반기 내내 채용비리 논란이 금융권에 번졌고 대출금리 산정체계 이슈까지 더해져 마치 은행이 부도덕한 집단처럼 돼버렸다.
여기에는 금융당국도 혼선을 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금감원은 최초에 피해가 수천 건에 달한다고만 밝혔을 뿐 해당 은행과 피해 건수, 피해액 등을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로 인해 은행마다 “우리는 아니다”라고 해명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어 전체 은행권에 대한 신뢰만 훼손됐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리 상승기여서 이런 문제까지 생기는 것 같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국내 금리도 올라갈 수밖에 없을 건데 은행들도 오해를 받지 않도록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며 말을 흐렸다. 시장금리가 상승할 테니 가산금리를 낮추도록 해 이를 상쇄하려는 것 아니냐는 뜻인데 조사 결과는 차치하고 대출금리 인상을 억제하는 압박 속에 은행들이 범죄집단으로 취급받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당국이 정책적인 유도보다 은행의 군기를 잡는 데만 몰두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은행에 대한 불신은 나날이 더 커지고 있다.
/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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