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현대자동차 ‘투싼’, 기아차 ‘스포티지’ 등 인기 차종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 차종은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차인 데 반해 미국 시장 내 주요 경쟁 차종은 미국·멕시코·캐나다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역내에서 생산되고 있어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사실상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27일 자동차 업계는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차의 경쟁 차종 생산지를 비교 분석하고 “수출차의 시장 퇴출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만드는 차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종은 현대차 ‘엘란트라(국내 아반떼)’ ‘쏘나타’ ‘싼타페’와 기아차 ‘옵티마(K5)’ ‘쏘렌토’뿐이다. 기아차 멕시코 공장에서 ‘포르테(K3)’ ‘리오(프라이드)’와 현대차 ‘엑센트’의 미국 판매량 중 일부를 공급하는 것 외에는 모두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차 가운데 대략 절반은 현지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여서 고율 관세의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만드는 닛산 ‘로그’와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트랙스’도 미국 수출용인데 25% 관세가 부과되면 르노그룹과 GM은 한국 공장에 대한 생산 위탁을 끊을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의 차종별 경쟁 관계를 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5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산 수출차는 ‘투싼’이다. 5만3,506대가 팔렸고 이는 미국 자동차 판매 순위 39위에 해당한다. 같은 차급의 기아차 ‘스포티지’는 같은 기간 3만5,013대가 팔린 62위다.
그러나 같은 차급의 강자들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돼 고율 관세가 부과돼도 피해가 없다. 1~5월 16만670대가 팔린 도요타 ‘라브4’는 캐나다 온타리오, 혼다 ‘CR-V’는 온타리오와 미국 오하이오·인디애나, 쉐보레 ‘이쿼녹스(13만4,198대)’는 온타리오, 포드 ‘이스케이프(11만5,726대)’는 미국 켄터키에서 각각 생산된다. 이 차급 1위인 닛산 로그(17만8,198대)는 부산에서 월 평균 1만1,000대를 만드는 것 외에는 전량 미국 테네시에서 생산된다. 투싼과 스포티지는 그렇지 않아도 이들 경쟁차에 크게 밀리는 판에 관세까지 부과되면 그야말로 ‘끝’이다.
요즘 유행인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도 마찬가지다. 올해 1~5월 미국 시장에서 1만953대가 팔린 현대차 ‘코나’, 미국 소비자에게 유독 사랑받는 기아차 ‘쏘울(4만165대)’ 모두 수출차인 데 비해 같은 차급의 혼다 ‘HR-V’는 나프타 역내인 멕시코에서 만들어진다.
소형차와 경차도 마찬가지다. 올해 미국 시장에서 9,170대가 팔린 기아차 리오, 현대차 엑센트(1만2,705)는 일부만 멕시코산이고 대부분은 한국산이다. 쉐보레 ‘스파크(9,836대)’ 역시 전량 한국GM 창원공장에서 만들었다. 반면 같은 차급의 닛산 ‘베르사’, 혼다 ‘핏’, 포드 ‘피에스타’, 도요타 ‘야리스’는 모두 멕시코에서 만든다.
아울러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럭셔리 차급의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는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퇴출된다. 전량 한국 생산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현대차의 경량 스포츠카인 ‘벨로스터’, 친환경차인 기아차의 ‘니로’와 현대차의 ‘아이오닉’ 모두 사실상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자 자동차 업계는 정부와 국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자동차가 전체 제조업의 13.9%(2016년 기준)를 담당하고 산업 종사자 수가 37만여명으로 전체 제조업의 1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고율 관세가 한국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완성차 대미 수출 차질까지 빚어지면 정말 심각해진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국회는 모든 원 구성도 안 된 상태로 손을 놓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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