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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로 영역 넓히는 금융투자] 투자 야성 키운 증권사...자금주선서 탈피 '개발사업 설계자'로

<상>증권사 '新 수익모델' 인프라 사업

해외 신도시 복합개발부터

GTX건설·역세권 재개발까지

초기 단계부터 직접 뛰어 들어

유동성 적극 활용 수익률 극대화





초대형 투자은행(IB)이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났다. 5개 대형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받아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은 정부가 바뀌고 일부 대형 증권사가 지배구조와 배당 오류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흐려졌다. 정부의 지원과 의지는 약해졌지만 오히려 증권사들은 작게나마 트인 물꼬를 토대로 투자 야성을 키우고 새로운 먹거리를 넓히고 있다. 특히 부동산복합개발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직접 뛰어드는 대형 증권사가 등장하고 있다. 건물을 담보로 대출하거나 건설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주선하는 정도였던 증권사가 인프라 사업에 나서 수익을 창출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난데없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금융사가 건설사를 제치고 총 3조3,641억원 규모의 철도 건설 사업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그룹 내 투자그룹인 신한글로벌&투자은행(GIB)이 현대건설(000720)과의 경쟁에서 큰 점수 차로 이기며 국토교통부의 선택을 받았다. 신한GIB는 은행 지주사 중에서도 증권사 중심으로 투자그룹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사업에는 은행·증권·자산운용사·캐피탈 등 그룹 계열사가 모두 참여했다. 비용을 줄이고 요금을 낮추는 방안을 내놓으며 비용 효율화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동환 신한금융그룹 GIB그룹장은 “건설사인 상대방에 비해 재무적투자자로서 증권사 특유의 구조화 능력을 통해 사업비를 절감하고 은행·자산운용·캐피탈 등 대형 기관투자가를 자체 보유해 자금조달의 안정성을 높인 게 성공 요인”이라고 자평했다.

금융투자사들이 인프라 개발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며 새로운 수익원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인수금융이나 자금 주선 등의 투자 업무가 아니라 아예 두 팔을 걷고 직접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역세권과 산업단지 재개발이나 주거와 상업·문화시설이 결합한 복합개발,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 등이 증권사 IB 부문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과거 증권사의 부동산 개발 사업은 건설사 입맛에 맞춰 투자자를 찾아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금융 주선에 만족해왔다. 지금은 증권사가 사업자가 돼 건설사와의 입찰경쟁을 통해 사업권을 따내고 시공할 건설사를 고르고 있다. 증권사는 대형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금리와 조건을 만들어 투자자를 설득하고 일정 이상 분양한 사업을 채권으로 바꿔 다른 증권사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기존 건설사나 은행보다 투자의 영역을 한층 확대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인프라 개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증권사 중 가장 먼저 해외진출을 시도해 이제는 현지법인 주도로 해외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총괄법인 역할을 하는 홍콩 미래에셋대우(006800)는 최근 베트남의 ‘여의도’로 불리며 떠오르는 신도시 투티엠에 고급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을 짓는 복합개발에 착수했다. 총 1조원 가까운 사업비를 외부 투자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미래에셋 자체 자금을 들여 현지 시행자와 합작투자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롯데그룹과 GS그룹 등 대형 건설사와 시행사를 보유한 대기업 이외에 국내 금융회사가 개발 사업 전반을 책임지는 투자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미래에셋대우는 12년 전 베트남에 진출해 현재 증권ㆍ자산운용ㆍ보험ㆍ캐피탈 등 전 계열사 법인 설립을 마친 후 현지에서 투자 대상 발굴부터 자금조달, 운용까지 가능한 체제를 갖췄다.



베트남은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 지주회사 등 금융그룹, 대기업 등이 앞다퉈 투자하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문턱이 많다. 현지분양하는 주거지역은 무조건 현지인에게 70%를 할애해야 하지만 뛰어오르는 집값은 현지인이 감당할 수준이 못 된다. 신도시 개발에 뛰어들 자금조달 능력과 시공 능력이 출중한 국내 대형 건설사도 현지에 도로 등 인프라를 지어줘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등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베트남은 현지 시행사를 끼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어려운데 오랫동안 투자를 이어온 경험이 이제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면서 “미래에셋의 상반기 실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성장세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틈새시장 창출에 증권사들이 나서고 있다. 기존에 있던 역세권을 재개발하며 공공성을 더하거나 반대로 산업단지에 주거시설을 추가해 실수요를 높이는 전략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업성만 강조해온 역세권 사업에 공공시설이나 서민·청년층을 위한 주거시설을 결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이러한 사업에 증권사들이 비집고 들어가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롯폰기힐스를 비롯해서 미국의 배터리파크시티,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독일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 등 선진국의 역세권과 주거·상업시설을 결합한 성공 모델이 서울에서도 곧 현실화할 예정이다. 증권사 중 역세권 개발 사업에 적극적인 곳 중 하나가 하나금융투자다. 경기도 광명시 KTX광명 역세권에 중앙대병원 건립을 포함한 총 6,343억원 규모의 복합의료시설과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총지휘하고 있다. 하나금투는 또 대구 전통시장 현대화, 울산 산업단지 고도화 등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다양한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하나금투 관계자는 “지역개발 사업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지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며 그것을 풀지 못해 지체되고 있는 지역개발 사업을 푸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 역시 묵혔던 대형 개발 사업을 풀어나가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1조2,000억원 규모의 서울 여의도 MBC 부지 개발 사업권을 따냈고 여의도 지하벙커 개발 사업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2조1,000억원 규모의 여의도 파크원 개발 사업에서는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이 2,000억원의 투자를 철회했는데도 NH금융그룹의 자금 능력으로 사업을 되살리며 국내에서는 드물게 대형 투자가 가능한 IB라는 인상을 남겼다. ‘1호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KDB산업은행·KB증권 등 4개의 경쟁자를 제치고 김포고촌지구 개발 사업자로 선정됐다. 고촌 개발 사업은 주거 및 문화·관광이라는 추상적인 키워드만 있을 뿐 사업자가 밑그림을 모두 그려야 하는 사업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과거 부동산 사업에서 대출성 투자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몰두하며 사실상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왔다”면서 “이제는 PF로 인한 우발채무 우려가 커지는 시점이고 증권사들이 개발 사업 초기부터 뛰어들어 수수료 등 수익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위험을 분산하는 진짜 경쟁에 돌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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