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밑그림은 복지부가 용역을 맡겨 고려대 산학연구원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전부다. 연구 보고서는 민간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수탁자책임위원회로 확대하고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를 근거로 하는 사회적책임(ESG) 투자를 전 영역에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는 보고서를 토대로 세미나와 토의절차를 거쳐 개인별 의견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대부분 상법·복지·금융투자 등을 전공한 학자 출신인 의결권 전문위원들은 보고서에 나온 스튜어드십 코드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해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위원은 “영국에서 처음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가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시장 자율규제”라며 “우리의 현실과 맞는지, 그리고 단기 헤지펀드의 악용 소지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존법과 부딪친다는 우려도 전문위원 사이에서 나왔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주요 주주로 기업에 정보를 요구하면 자본시장법상 내부자거래로 간주될 수 있다.
의결권 전문위원들은 또 스튜어드십 코드의 청사진을 그린 기업지배구조원이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맡는 것도 이해 상충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점은 자본시장연구원도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에 제기했다. 그러나 금융위나 복지부 모두 이 같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국내에는 대신지배구조연구소·서스틴베스트 등이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다. 해외에서는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전 세계 의결권 자문 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지만 삼성물산의 주주명단조차 틀리는 등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게 기관투자가의 설명이다.
다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가 낮은 배당률을 받고도 보유한 지분에 합당하게 주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점은 문제가 크다는 반론도 많았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국민연금이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에 이어 국내 2번째 규모의 연기금인 교직원공제회의 강성석 기금운용이사(CIO)는 “진정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투자자가 기업이 최대의 수익을 돌려주는 지 감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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