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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북아 번영 이끌 한러 천연가스 협력

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

남·북·러 파이프라인천연가스

에너지 안정성·가격경쟁력 높여

中 등 동북아PNG 확대 계기도





1962년 미국의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펴내 과학계는 물론 철학계에도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사용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이후 학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사용됐는데, 특정 분야의 혁명적 변화를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한다. 요즘 환경과 에너지를 다루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발전의 동력으로 사용해온 석탄과 석유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그것이다. 화석연료가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문제는 석탄과 석유의 대안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과 공급방법의 혁신이 일어나지만 석탄과 석유의 저렴함과 공급 안정성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원전 및 석탄발전 비중 축소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한 에너지 전환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 보급목표를 충족시키기에는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울 현실적 에너지원은 천연가스뿐이다. 천연가스는 석탄이나 석유에 비해 깨끗하며 매장량도 풍부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통해 천연가스 3,700만톤 전량을 LNG 형태로 들여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LNG뿐 아니라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수입하는 유럽보다 가격이 비싸고 공급이 불안하다. 특히 겨울철과 여름철의 수요격차가 큰 우리나라의 계절적 특성은 에너지 수급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오랫동안 지속시켜왔는데,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유럽처럼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를 도입해 공급 안정성과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자원의 보고인 러시아는 동북아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오랫동안 주목돼왔지만 냉전체제와 남북분단으로 그동안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4월27일 이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최근 19년 만에 우리 정상의 국빈방문으로 성사된 한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대한 기대가 커짐에 따라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도입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다변화 정책과 우리의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 정책은 국가 간 이해가 일치할 뿐 아니라 LNG에 대한 가격협상력을 높여 저렴한 에너지 사용이라는 국민의 바람도 충족시킬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다. 러시아로부터 PNG가 도입될 경우 배관노선 협의 시 북한의 참여가 필요하다. 북한의 참여는 대륙과 단절된 에너지와 수송 인프라를 잇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남북러 PNG 사업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천연가스 환상망 사업으로 확대될 것이다.

공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북한을 관통하는 남북러 PNG 도입을 검토했으나 북한 핵 개발과 남북관계 경색으로 진전을 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 북한 비핵화를 계기로 한반도 긴장이 완화될 경우 남북러 PNG 사업도 논의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가스공사는 러시아 측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PNG 도입을 위한 사전논의를 착실히 해나감으로써 러시아 PNG가 차질 없이 도입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우리 기업이 자원개발 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 북극 LNG 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LNG선 건조 기술과 플랜트 건설 기술은 침체된 우리 경제에 활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제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석탄과 석유 사용량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 사용 확대로 패러다임 전환을 기대한다면 우선 안정적 공급체계와 가격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대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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