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바이오젠이 공동 계약을 유지하는 가운데 신약 개발을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지분을 조기에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셸 보나토스 바이오젠 대표는 이달 초 열린 실적발표 콘퍼런스에서 “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오래 보유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콜옵션 행사로 바이오젠은 약 8,000억원을 투자해 기업가치가 최대 23조원에 달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절반을 확보할 수 있지만 조기에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서둘러 매각하려는 이유는 개발 중인 차세대 신약을 조기에 출시하기 위해서다. 바이오젠은 현재 중추신경계 치료제를 공식 신약 파이프라인(후보군)에 추가하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치료질환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인 것으로 추정한다.
치매 치료제는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통틀어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분야다. 화이자·노바티스·사노피 등 주요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최종 임상시험에서 효능을 입증하지 못해 모두 고배를 마셨다. 현재 출시된 치매 치료제 역시 일시적으로 치매 증상을 늦춰주는 보조치료제 역할에 머물고 있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젠이 바이오에피스 매각을 통해 치매 치료제의 비용을 충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후보물질 단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효능을 입증한 만큼 자본 투입이 빠를수록 임상시험을 조기에 완료하고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젠이 보유한 바이오에피스 지분을 누구에게 매각하느냐가 시장의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삼성물산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바이오젠으로부터 지분을 되사오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삼성이 지분을 매입할 경우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이 주력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향후 수주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맡긴 글로벌 제약사가 기술 유출을 이유로 거래관계를 끊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바이오젠이 사모펀드나 다른 글로벌 바이오 기업에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이 경우 지분 평가액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할 수 있어 선뜻 지분 인수에 나설 수 있는 기업이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콜옵션 행사 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바이오젠에 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지분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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