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회갈등 문제가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일임했다고 한다. 시민사회비서관이 엄연히 있었지만 “노동변호사로 오래 일해 잘 아는 분야이니 맡아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에게 닥친 첫 시련은 민주노총 소속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제공시스템) 반대 시위. 전교조는 연가투쟁을 했고 교육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전교조 지도부와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만나 의견을 조율하려 했지만 동선이 언론에 보도돼 급하게 차를 돌려 장소를 바꾸는 등 나이스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이후에도 민노총 소속 화물연대, 철도노조 파업으로 최악의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스트레스에 치아를 10개나 뽑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민노총이 본격적으로 청와대에 각을 세우고 나서면서 참여정부 데자뷔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과 민노총의 악연을 지켜봤던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의 업무가 아님에도 갈등관리 문제를 조율하면서 민노총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그랬던 민노총이 또 정권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임금이 16.4%나 올라가고 주52시간 근로체제가 시행됐으며 한상균 전 위원장도 조기 가석방되는 등 친노동정책에도 민노총은 요구사항을 늘리며 계속 ‘촛불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에 반대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했다. 3일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만나 “최저임금 개정으로 노동존중,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1만원 정책 자체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특례 조항 재개정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등 요구사항을 줄줄이 말했다.
15년 전과 같이 문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정권 창출의 지분이 있는 민노총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지만 마냥 들어주자니 과거처럼 추가 요구를 하며 파업할 경우 국정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 방향은 흔들림이 없다”면서도 “노동계와 정부 간에 의견이 일치돼도 한국사회 전체를 봐주기 바란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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