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경유) 연료 차량인 폭스바겐 구형 티구안을 3년째 타던 정청모(37)씨는 최근 가솔린(휘발유) 차인 BMW 530i로 바꿨다. 당초 연비도 좋고 가격도 가솔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디젤 모델인 520d를 사려 했지만 최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데다 미래 중고차 가격과 승차감까지 고려해 가솔린차로 마음을 돌렸다. 정씨는 “최근 2년간 디젤 게이트 여파로 디젤차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 예전만 못한데다 특히 미세먼지의 주원인으로 꼽히면서 정부의 규제책도 강화되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디젤 vs 가솔린 격차 3년 새 42% → 1.1%=수입차 시장에서 7년간 계속됐던 ‘디젤 천하’가 막을 내리고 있다. 15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판매량 가운데 가솔린 모델의 점유율이 45.1%로 디젤(46.6%)과 격차를 1.1%포인트까지 좁혔다.
과거에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는 가솔린 차량이 압도적이었다. 지난 2005년의 경우 가솔린 모델 점유율이 95.9%에 달했다. 하지만 2009년 유럽연합(EU)이 디젤 차량에 질소산화물을 기존보다 60% 줄인 ‘유로 5’를 적용하고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이를 충족하는 차량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우리 정부도 ‘환경친화적 자동차 개발과 보급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디젤 차량을 친환경차 범주에 넣었다. 이에 2009년 22.4%였던 디젤차가 2015년 68.8%로 수직 상승했고 가솔린 점유율은 26.9%까지 추락했다. 연비와 친환경성을 모두 잡은 ‘클린 디젤’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탓이다. 하지만 2015년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로 연비를 조작한 ‘디젤 게이트’가 터지면서 디젤 차량에 대한 환상이 무너졌고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소비자의 반응도 급속도로 식었다. 그 결과 2015년 41.9%였던 디젤과 가솔린 차량의 점유율 격차는 3년 만인 올 상반기에 1.1%까지 좁혀졌다.
◇가솔린 선호에 ‘품격·정숙’ 상징 벤츠 1위로=디젤 침몰에 시장도 지각변동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메르세데스벤츠가 2016년부터 부동의 수입차 1위를 구축한 것이다. 디젤엔진으로 시장을 주름잡았던 BMW는 벤츠에 왕좌를 내줬고 아우디·폭스바겐은 한국 시장에서 2년간 철수했다.
디젤 게이트가 본격화하기 전 2015년 수입차 판매 상위 5개 차종(티구안·A6·520d·골프·320d)은 모두 디젤차였다. 하지만 올 상반기 기준 상위 5개 차종(E200·520d·E3004매틱·ES300h·익스플로러2.3) 중 디젤차는 520d 한 대다. 특히 가솔린 모델이 주력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시장 장악력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벤츠는 세계 최초로 가솔린 엔진 차량을 개발한 회사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상위 10개 차종(6만3,453대) 가운데 벤츠의 중형세단 E클래스 가솔린 모델 3종의 판매량은 1만8,761대로 3분의1가량을 차지했다. 올 상반기에도 E200이 6,875대 팔리며 1위에, E300 4매틱은 4,891대로 3위에 랭크됐다. 벤츠를 판매하는 더클래스효성 딜러는 “솔직히 디젤 차량이 가솔린보다 승차감도 떨어지는데도 연비 때문에 인기를 누려왔다”며 “하지만 가솔린 모델의 연비도 좋아진데다 브랜드 명성이 높은 벤츠로 수요가 옮겨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MW도 올 하반기 뒤늦게 E200의 대항마인 520i를 8년 만에 내놓고 반격에 나섰다.
◇변수는 ‘디젤 게이트’ 주범 폭스바겐·아우디=시장 수요만 보면 업계에서는 상반기 가솔린차 판매량이 디젤을 넘어섰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 역전되지 않은 것은 디젤 게이트의 핵심인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복귀다. 2년여 만에 국내 시장에 돌아온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올해 3월과 4월 A6와 신형 티구안 디젤 모델을 국내에서 쏟아내며 수입차 시장을 휩쓸고 있다. 티구안과 A6가 각각 수입차 판매량 1위와 3위를 차지한 지난달은 디젤차 점유율이 49%로 올라섰다. 업계 관계자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대대적인 할인으로 디젤차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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