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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규제완화]혁신 의료기 '後규제' 전환...기득권에 '원격의료 대못'은 여전

390일 걸리던 체외진단기기 출시 80일로 단축

文, 외국 혈당기 불법 사용 소아당뇨환자에 공감

업계 "규제완화 방침 환영하지만 범위 더 넓혀야"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정책 발표회’를 마친 후 전시 부스를 방문해 네오펙트의 재활 치료용 글러브를 끼고 재활 훈련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시장 진입에 1년 이상 소요되던 의료기기가 80일 이내에 출시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9일 경기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첨단 의료기기가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규제 혁신을 약속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약속에 따라 앞으로 인체 유해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필요한 이중 규제 탓에 시장 진입에만 최장 390일이 걸렸던 체외진단기기의 출시는 앞으로 80일 이내로 단축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은 또 인공지능(AI)이나 3D 프린팅, 로봇 등을 활용한 첨단 의료기술에 대해서도 혁신성이 인정된다면 곧장 시장에 제품이 출시될 수 있도록 별도의 평가 트랙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원격의료법·생명윤리법 등 첨단 의료기기 산업 발전을 위해 완화가 필요한 규제들이 여전히 굳건한 상황에서 체외진단기기 등에만 국한된 이번 규제 완화 방침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관계부처는 19일 의료기기 시장 진입 기간을 단축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 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기기 산업 육성책을 내놓으며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유방암 수술 후 상태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도 국내에 문헌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허가받지 못한 사례가 있는데 이제 이런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문 대통령은 소아당뇨환자인 정소명군과 어머니 김미영씨의 사연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며 의료기기 규제 개선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소명군은 하루에도 열 번씩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하는 소아당뇨 환자다. 이런 아들을 위해 김씨는 해외 사이트를 뒤져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찾아냈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아이가 학교에 가더라도 원격으로 혈당을 체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 혈당측정기를 구입해주고 앱을 제공해주기도 했으나 이런 행위가 의료기기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문 대통령은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고 속상했을까 싶다”며 “소명이 어머니의 이야기는 의료기기의 규제에 대해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소명군과 같은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인체로부터 채취된 혈액·소변·침 등의 검체를 이용해 당뇨·치매·암 등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체외진단기기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제품 인허가만 받으면 곧장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이미 몸 밖으로 자연스레 배출된 혈액·소변 등을 이용해 검사를 진행하기에 인체 유해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다른 의료기기와 마찬가지로 기술평가 등의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해 ‘불필요한 이중 규제’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번 규제 완화 방침에 따라 앞으로 체외진단기기는 ‘선 시장 출시 후 평가’를 받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의 적용을 받게 된다. 아울러 정부는 AI, 3D 프린팅 등 첨단기술이 접목된 혁신·첨단기기에 대해 축적된 연구·임상 데이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잠재가치 등을 평가해 우선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게끔 해주는 별도의 평가 트랙을 운영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적용까지 최장 520일 걸리던 신의료기기·기술 등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해 최장 390일까지 줄일 계획도 발표했다.

의료기기 인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처 관계자는 “만약 제품이 시장 출시 후 문제가 생긴다면 즉시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할 것”이라며 “최신 의료기기의 출시가 빨라지면 관련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환자와 국민들도 그만큼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우수 병원에 ‘산병협력단’을 설립하게 해 첨단 의료기술 발전을 지원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의료기기 개발에 숙련된 의료인력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산병협력단은 병원과 산업계 협력을 통해 병원의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를 실용화하고 이를 통해 의료기술 발전을 꾀하는 조직으로 산학협력단과 유사한 별도의 법인체를 의미한다. 정부는 이 조직을 통해 보건의료 지식 및 기술의 특허출원, 기술이전, 창업 등의 사업화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정부 발표가 나오자 그동안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체외진단기업협의회 등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는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이사는 “이중 규제로 시장 진입과 수익성 제한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기업들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내 우수 체외진단기업들의 노력으로 질병 진단·예방시장을 선도해 국민 건강과 의료비 절감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기기 산업의 규제 완화라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원격의료법, 첨단 의료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생명윤리법 등 ‘대못 규제’가 견고한 상황에서 체외진단기기에 국한해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체외진단기기 분야의 규제는 그야말로 ‘불필요한’ 상황이라 당연히 없애야 했고 지금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기존에 없던 첨단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 완화”라며 “(정부가) 첨단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개발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은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게 운용되는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라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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