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공대에 물리Ⅱ를 배우지 않고 미적분도 잘 모르는 학생이 절반이나 되는데 수능에서 인공지능(AI)의 토대인 기하도 빼고 과학Ⅱ(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심화)도 배제한다니 뭔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29일 교육계와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기하와 벡터’를 빼고 이듬해에는 이과생도 확률과 통계, 미적분 중 택일하도록 하고 과학 심화과정인 ‘과학Ⅱ’는 아예 배제하기로 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분 아래 수학·과학 교육을 약화시키면 결국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미래 인재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은 물론이고 중국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만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2015년)를 보면 한국 학생의 과학성적은 5위지만 흥미도는 26위에 그쳤다. 그저 외우고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해 기초개념이 튼튼하지 못해 응용력이 약해진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이공계 위기론이 나오는 판에 기하와 과학Ⅱ를 배우지 않는다면 수학·과학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으로 우려된다. 교육 현장에서도 기하나 벡터 등이 없어진다고 학업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며 기존 암기식 학습에서 탈피해 창의성을 길러주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기하 등을 대학에서 배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있으나 이공계생의 상당수가 기초개념이 부족해 별도의 교육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작용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향숙 대한수학회 회장(이화여대 교수)은 “해외에서는 STEM을 강화하는데 우리는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창의·융합·논리적 사고력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수학·과학 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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