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영 실패가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의 발단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회장이 그룹재건을 위한 돈줄로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했다는 것. 그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은 부실해졌고, 결국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처지가 됐다는 지적이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
1988년 2월 17일,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형 고(故) 박성용 회장 때의 일이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운항면허를 취득하자 박성용 회장은 “국민이 믿고 안락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를 만들려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2018년 7월 17일 아침, 증권가와 재계에서 “SK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이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SK그룹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아시아나항공의 SK 피인수설’은 반나절도 안돼 ‘없던 일’로 끝났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단순한 ‘헤프닝’이 아니라는 시각이 여전하다. 몇몇 대기업들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고 군침을 흘린다는 제법 그럴듯한 소문도 들리고 있다.
최근 국내 항공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항공기 운항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비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 2014년 배럴당 100달러에 달하던 국제유가는 올해 6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여행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내국인 해외 출국자 수는 2,650만 명이었다. 한국인 2명 중 1명이 해외를 다녀온 셈이다. 저가항공사가 여럿 생겨나면서 공급이 빠르게 늘고 있음에도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휴대전화 등 IT 산업 호황에 따라 항공화물수요가 늘어난 점도 주효하게 작용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15년 38억 명이던 국제 여객 수가 2035년엔 72억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IATA는 특히 아시아 지역이 이 같은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분석했다.
성장이 담보된 산업이란 평가 속에 항공사를 인수하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셈법이 나오고 있다. SK그룹과 한화그룹, 애경그룹 등이 아시아나항공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SK그룹 내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건 사실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올해 4월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를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내 신설부서 글로벌사업개발부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최 부사장은 2012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제주항공 대표를 맡아 제주항공을 저비용항공사 1위로 굳힌 주역이다. 최근에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박정호 사장의 제안을 공식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도 항공사업 진입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저비용항공사 ‘에어로케이(충북 청주에 기반을 둔 신생 저비용항공사로, 작년 말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운송사업자 면허 신청을 냈지만 반려됐다)’ 설립 시 지분 투자에 참여했다가 철수하는 등 이미 항공사업에 관심을 나타낸 바 있다. 항공사업은 한화그룹 내 항공우주·호텔·레저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항공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최근 이스타항공 인수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은 저비용항공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형 항공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 7월 준공 예정인 그룹 통합 신사옥(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건설 투자에 자금이 많이 투입돼 인수에 제약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기정사실처럼 돌고 있는 이 이야기들에 대해 SK, 한화, 애경 모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항공사 M&A가 실제로 이뤄지기까진 난관이 많아요. 우선 항공사 인수를 위한 키포인트는 정부 승인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항공사 주인이 바뀌면 정부의 변경면허를 받아야 하니까요. 심사 과정에선 항공교통 안전, 이용자 편의, 재무능력 등 다양한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이후에도 노선 취항 허가 등 정부 눈치를 볼 일이 많고요.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 자산입니다. 경영권 위기가 있으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수성을 위해 총력전을 펼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정부가 드러내 놓고 어느 편을 들거나 조율할 상황도 아니죠. 기업간 인수합병이 자칫 정치 쟁점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이 성급하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을 겁니다.”
▶오너 리스크에 빠진 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이 M&A 루머에 휩싸인 근본 원인은 회사의 유동성 악화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 자산은 8조 5,000억 원이다. 이중 86%는 빌린 돈(부채)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수년간 재무 상태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기내식 대란’으로 오너 리스크까지 불거졌다. 박삼구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경영권에 경고등이 켜지자 M&A 이슈가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연원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지분 72%, 인수가 6조4,255억 원)한 때였다. 그리고 곧 이어 2008년 대한통운까지 인수(지분 60%, 인수가 4조1,040억 원)했다. 인수합병 두 건으로 금호아시아나는 당시 재계 8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돈이 적지 않게 투입됐다. 아시아나항공은 2006년 대우건설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2,500억 원을 사용했다. 2008년엔 금호산업으로부터 대한통운 지분을 1,469억 원에 사들였다. 이후 대한통운이 진행한 유상증자(제3자 배정방식)에도 1조3,970억 원을 쏟아 부었다. 그때 부채까지 짊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유상증자 참여를 위해 단기차입금 5,460억 원을 끌어왔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무리하게 몸집을 키운 금호아시아나에 탈이 났다.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헐값에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두 기업 인수에 자금을 집어 넣었던 금호산업, 금호타이어도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절차(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채권단 관리를 받는 신세가 됐다. 그후 처음부터 무리라며 인수를 말렸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친형인 박삼구 회장에게 등을 돌렸다. 박찬구 회장이 형인 박삼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그룹은 둘로 쪼개졌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이렇게까지 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며 “금융위기가 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변명했다.
박삼구 회장은 워크아웃에서 빠져나온 금호산업을 재인수할 때 지주사 금호기업(금호기업은 이후 금호고속·금호터미널과 합병돼 금호홀딩스가 됐다가 지난 4월 다시 금호고속으로 이름을 변경했다)을 만들었다. 그 때도 박삼구 회장이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로 있던 금호터미널을 2,700억 원에 금호기업으로 넘겼는데 이 가격이 너무 낮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도 아시아나항공 2대 주주인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아시아나항공 지분 11.98% 보유)이 크게 반발했다(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는 33.47%를 가진 금호산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기내식 대란 사태의 원인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아시아나항공의 무리한 경영 판단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납품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기존 계약업체였던 LSG 측에 “재계약을 원하면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 원어치를 사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LSG가 이를 거부하자 아시아나항공은 다른 기내식 납품업체인 게이트고메코리아와 손을 잡았다. 이 회사의 모그룹인 중국 하이난항공그룹은 금호홀딩스의 BW를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올 3월 게이트고메코리아 생산공장에 불이 났고, 아시아나항공은 급한 대로 샤프도앤코와 단기 계약을 맺었다. 이후 샤프도앤코가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수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결국 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기내식 대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정리하면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권을 중국 하이난항공그룹에 내주고 금호타이어 인수자금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회사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경영진을 규탄하며 거리로 나선 건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승객 안전까지 담보로 잡힌 아시아나항공
여전히 게이트고메코리아는 기내식 공급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샤프도앤코가 오는 10월까지 기내식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급 능력에 물음표가 남아있다. 성수기 1일 최대 3만 식의 기내식이 필요하지만 샤프도앤코의 공급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기내식 대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게이트고메코리아가 (화재가 난) 건물을 다시 지어 준공 승인을 받은 뒤, 식품면허 신청과 보세공장 운영을 위한 특허 등을 획득해야 하는데, 그 기간을 9월까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월부터는 게이트고메코리아가 정상적으로 기내식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돈에 쪼들리며 회사를 유지하는 동안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기내식 공급 차질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아시아나항공에 운항 지연 사태 악재까지 겹쳤다. 지난 7월 15일 하노이발 인천행 아시아나항공 OZ728편이 브레이크 계통 결함으로 출발이 지연됐다. 대체 항공편 투입으로 일단 수습을 했지만, 이튿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인천에 도착한 A380 한대가 연료 계통 문제로 정비에 들어가 장거리 국제선 운항이 계속해서 차질을 빚었다. 7월 15일 이후 확인된 운항 지연만 OZ728편을 포함해 모두 7건이다. 7월 17일 하루에만 인천발 미국 뉴욕행 비행기 등 3건의 운항이 지연됐다. 지난 7월 18일에는 낮 12시 출발 예정이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아시아나항공 OZ541편이 2시간 10분 지연되기도 했다. 오후 2시 40분 인천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려던 OZ202편도 오후 5시 50분으로 출발이 변경됐다.
아시아나항공 측이 항공기 정비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승무원들은 기내식 대란 이후 또 다시 승객들의 원성을 들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한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은 “경영을 잘못한 사람들 때문에 왜 우리가 최전방에서 방패막이로 살아야 하나”라면서 “잘못된 경영진을 끌어내리고, 잘못된 계약을 파기하는 등 우리 일터는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지연율은 9.79%로, 저비용항공사를 포함한 국내 8개 항공사 중 1위였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2016년 한해를 제외하고 모두 지연율 1위라는 오명을 썼다. 2016년에도 지연율 2위를 기록, 사실상 국내에서 가장 지연이 잦은 항공사로 손꼽혀왔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적 항공사 가운데 노후 항공기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지난해 10월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보유한 항공기 가운데 노후 항공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22.9%에 달했다. 경쟁사인 대한항공이 12.5% 수준인 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외항사와 저비용항공사 등이 최근 항공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 경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엔진 등 기타 주요 부품도 많이 부족해 ‘돌려막기식’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내부고발도 나오고 있다. 운용 중인 항공기에서 부품을 떼어내 다른 비행기에 장착한 뒤 운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내식 대란 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모인 익명 단체채팅방에선 “장거리 노선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대당 4,000억 원이나 하는 A380 등 최신 기종을 들여놓고도 운항 지연의 대명사가 됐다”며 “정비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고, 부품을 돌려막으며 기체 결함을 쉬쉬하더니 언젠가 터질 일이 터지고 말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평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지 않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그룹을 벼랑 끝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고, 국민이 안심하고 이용해야 할 항공사의 신뢰도에 결정적 오명을 남겼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이미지 제고와 소비자 신뢰 회복, 내부 직원 소통 강화를 위한 신뢰회복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내달 말까지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뢰회복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만들겠다는 안이한 생각과 시도 자체가 아시아나항공에게 여전히 병을 고칠 의지가 없다는 걸을 보여주는 방증이란 따끔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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