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국 간쑤성 성도인 란저우시 도심에 위치한 간쑤국제회의센터는 란저우 투자무역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전 세계 41개국 기업인들과 30여개국 주요 부처 관료·대사들로 북적였다. 중국의 최대 빈곤 지역으로 꼽히는 북서부 변방 간쑤성에서 열리는 란저우 무역박람회가 전 세계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을 끌어모은 이유는 간단하다. 글로벌 슈퍼 파워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과 정치·외교·안보 패권의 힘 때문이다.
지난해 30여개국이 참석했던 란저우 투자무역박람회는 올해 40여개로 참가국 수를 늘리며 규모가 더 커졌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파키스탄의 한 기업인은 “중국 당국이 외교 채널 등을 통해 초청장을 보내고 참가 압력을 넣기 때문에 베이징이나 상하이·선전 등 중국의 중심 도시가 아닌 이 같은 변방 지역 성도에서 열리는 행사에도 참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란저우는 중국의 정치·외교와 경제·산업 분야에서는 변방이지만 시진핑 지도부에는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정책의 핵심과 연결되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중국의 젖줄이자 중국 문명의 발원지로 꼽히는 황허강이 서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란저우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잇는 육상벨트의 핵심 도시다. 시 주석이 국가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가운데 육상 실크로드의 서역 관문이면서 중동과 지중해, 남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인도양, 서북쪽으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물류망 건설의 중추가 되는 이곳은 일대일로를 따라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국 외교력의 관문이기도 한 셈이다.
변방의 란저우로까지 세계 관료들을 집결시키는 차이나 파워에 힘입어 중국의 ‘정치 1번지’ 베이징은 어느새 중국의 신패권주의를 상징하는 글로벌 외교의 중심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만㎡의 부지 위에 중하이(中海)와 난하이(南海) 두 개의 큰 호수가 들어서 있고 명청시대 때 지어진 고색 가득한 건축물이 어우러진 베이징 시내의 중심지 중난하이는 시 주석이 추구하는 중화 부흥의 꿈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시 주석의 오른팔인 왕치산 부주석의 중난하이 집무실에 올해 들어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부터 도미니카 외교장관, 필리핀 외무장관, 베트남 경제부장 등 세계 각국의 외교·경제 수장들과 미국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과 람 이매뉴얼 미국 시카고 시장 등을 줄줄이 불러들였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매년 수십명의 전 세계 각국 최고 지도자와 외교관들이 줄을 잇고 머리를 조아리는 중난하이는 슈퍼 파워 차이나의 패권을 드러내는 이른바 ‘중국판 외교 메카’처럼 변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와 북핵 이슈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사드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5월 우리 정부대표단은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를 찾았다. 6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 고위인사 대화’에 참석한 정치인과 대기업 총수들도 행사 후 리커창 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에서 눈도장을 찍기에 바빴다.
글로벌 외교안보 이슈에서 이른바 ‘차이나 웨이’를 고집하는 중국은 중난하이에 불러들인 각국 외교 대표들에게 여러 무례한 권위주의적 의전 행태를 보이며 외국 대표단 길들이기에 나서기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이 같은 중국 식 고압 패권외교 행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크지만 중국 지도부는 서구 식 민주주의제도와 중국의 사회주의적 지도체제의 구조적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세계 주요2개국으로 성장한 중국 식 모델에 세계가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산실인 중난하이가 서구 민주주의와 대척점에 선 권위주의 모델로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속내가 읽히는 곳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장옌셩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 수석 연구원은 “중국이 원하는 것은 부흥이 아니라 과거 전성기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중국이 전 세계 경제의 15%를 차지하는 거대 강국으로 도약한 만큼 이제 세계 각국은 서구 식 관념이 아닌 중국 식 사고방식인 ‘차이나 웨이’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란저우·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