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에 참여한 서울경제 펠로(자문단)와 경제 전문가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대기업을 경제운용 주체로 대우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 창출을 당부하고 경제부처 장관들도 연이어 대기업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대기업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혁신성장을 위해 서둘러 풀어야 할 규제 완화 분야로는 의료와 금융 분야, 수도권 규제 등이 꼽혔다.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 혼란을 주는 일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58주년을 맞아 서경 펠로와 경제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정부가 기업을 대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대기업을 경제운용 주체로 대우하고 있냐고 묻자 절반이 넘는 56%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는 입장은 18%, ‘대기업 개혁이 우선’이라는 입장은 14%에 그쳤다. 김병주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기업의 의욕을 고취시켜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며 “이념에 휘둘리지 말고 현실에 기반을 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이 같은 진단을 내놓은 것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힘이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경제지표들이 대부분 부정적이다. 전날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0년 이후 18년 만에 4개월 연속 쪼그라들었다. 산업생산 역시 3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기업의 투자 심리도 주저앉아 지난달 전 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5로 5포인트 떨어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2015년 6월(-9포인트) 이후 가장 큰 폭이다.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여건이 안되니 고용도 부진하다.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째 취업자 수 증가 폭이 10만명대를 기록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이자 정부는 최근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3% 성장 전망을 포기하고 32만명이던 일자리 목표를 18만명으로 대폭 줄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대기업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경제 여건은 갈수록 나빠질 것”이라며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돌아서 대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혁신성장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분야에서 규제 완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주관식 질문에는 의료·금융·바이오 분야, 대기업 규제, 수도권 규제 등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혁신성장본부를 운영하며 대대적으로 해묵은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환자와 의료인 간 원격의료 허용, 인터넷 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수도권 입지 규제 등은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고 통 큰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 보니 규제 혁신 작업이 계속 더뎌지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든 분야에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한 분야의 문제라기보다 정부가 허용해주는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이 문제”라며 “전면적으로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독점 사업자와 노동조합, 이해집단의 기득권부터 깨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됐다. 한 서경 펠로는 “가령 의료 분야에서는 의사 집단, 에너지 분야에서는 독점 공기업, 이 밖에도 노조와 이해집단의 반대 등의 제약으로 신기술이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이 크다”며 “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혁신성장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다수 나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지배구조 개편을 강요하고 사정 당국이 돌아가면서 기업들을 드나드는 현실에서는 기업들이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시장경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원장 역시 “기업에 대한 자율성과 경쟁 보장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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