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의 대표 관광지인 속초시에 들어선 고급 타운하우스인 ‘영랑호 인트라움’의 주방 공간엔 특색이 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이 곳은 10억원의 고분양가와 지방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내 부유층들의 ‘세컨드 하우스’로 주목받으며 28세대가 모두 완판됐다. 주목할 점은 비슷한 가격대의 고급 주택들이 주방 공간을 독일·이탈리아 등 수입 브랜드로 꾸민 것과 달리 국내 회사 제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냉장고·오븐 등 주방 가구는 바로 한샘(009240)이 10년 전부터 고급 주방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프리미엄 브랜드 ‘키친바흐’에서 제작한 5시리즈다.
1일 주방가구업계에 따르면 독일의 불탑·지매틱, 이탈리아의 다다·보피 등 해외 수입 브랜드들이 점령해왔던 국내 프리미엄 부엌가구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부엌가구 한 패키지 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주방가구 시장은 그동안 소비자들이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면서 국내 가구업체들의 무덤으로 불려 왔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방가구 회사들이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 회사의 프리미엄 주방 가전 제품들을 탑재한 가성비 높은 부엌 가구들을 내놓으면서 수입 브랜드 위주였던 시장에 지각변동 조짐이 생기고 있다.
변화를 이끌고 있는 업체는 한샘이다. 한샘은 국내 가구업체로는 최초로 지난 2006년 프리미엄 부엌가구 브랜드인 ‘키친 바흐’를 론칭했다. 처음 론칭할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이탈리아 명품 수입 주방가구들이 시장을 거의 장악한 탓에 키친 바흐의 매출액은 100억원이 채 되질 않았다.
‘주방 가구업계의 ‘벤츠’로 불리는 독일의 불탑은 2~3억원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급 빌라나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속속 팔려나갔다. 판매량은 연 50세트 안팎으로 많지 않지만 개당 가격이 높고 고정적인 수요가 있다 보니 연간 수백억 원의 매출을 쉽게 찍었다. 불탑·지매틱·포겐폴·다다·보피·바레나 등 국내 고급 주방가구 시장을 장악한 ‘빅6’의 수입 업체들에게 한국 시장은 ‘땅 짚고 헤엄치기’와 다름 없었다.
대부분 국내 업체들이 높은 진입 장벽에 혀를 내두를 때 한샘은 가능성을 엿봤다. 명품 수입 주방가구는 브랜드 선호도는 높았지만 주문 후 제작까지 보통 3개월 이상 소요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소비자들이 점차 현명해지면서 수입 주방가구의 높은 가격 뒤에는 통관과 복잡한 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여기에 각 가정의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가격이 비싸더라도 주방의 가치를 높여주는 프리미엄 제품을 선호하는 수요자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이 지점에서 한샘은 과거 일부 부유층의 가정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고급 주방가구가 대중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키친바흐 관계자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재건축이 활발해지면 기존의 명품 수입가구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가성비 높은 제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소비자에게 다가가면 기존과 다른 프리미엄 부엌가구 시장이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고 회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시장의 변화를 읽고 가성비 높은 제품을 출시하니 키친바흐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BMW의 3·5·7 시리즈처럼 키친바흐는 집안의 평형에 따라 ‘프리미엄 3시리즈(40평형)’, ‘인텔리전트 5시리즈(50평형)’, ‘하이엔드 7시리즈(60평대 이상)’로 제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고급주방 가구 시장을 공략했다.
가격은 3시리즈가 1,000만원대, 5시리즈2,000만원대, 7시리즈 5,000만원대다. 명품 수입 브랜드보다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유지했다. 고급 주방가구 패키지에 들어가는 빌트인 가전제품은 LG전자의 프리미엄 라인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로 채웠다.
2006년 브랜드 론칭 이후 5~6년 간 줄곧 100~200억원에 머물렀던 키친바흐의 매출액은 2012년 300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후 매년 20~30% 고속성장을 이어가 지난해 말 기준 1,000억원 안팎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첫 출시 대비 10배 이상의 성장률이다.
전체 매출의 60%는 고급 아파트 단지, 40%는 일반 주택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말 기준 키친바흐의 3·5·7 시리즈 총 판매 세트는 약 1만 개로 설치 기준으로 보면 국내 프리미엄 부엌가구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다. 키친바흐 관계자는 “아직까진 최고급 주방가구시장은 수입 명품 브랜드들이 강세를 띠고 있지만 그동안 키친바흐가 대중화 노력을 기울이면서 고급 주방가구 시장 안에서도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되고 있다”며 “고급 주방가구의 대중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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