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의 싱글라이프를 보여주는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 박나래는 제이블랙의 댄스 스튜디오를 찾아 섹시 댄스를 배우며 구슬땀을 흘렸다. 박나래는 앞서 주짓수를 배우며 매트 위를 굴렀고 꽃꽂이를 익히는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배우 이시언 역시 주민센터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방송을 위한 콘셉트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모습은 요즘 싱글족들의 일상에 ‘배움’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싱글라이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욜로(YOLO)’다. ‘하나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살자’는 의미처럼 자신을 위한 아낌 없는 소비가 그들의 삶을 대변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나 혼자 사는 생활을 즐긴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욜로족들에게 배움은 인생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401명을 대상으로 한 ‘욜로라이프’ 조사에서 전체의 37.4%가 욜로의 의미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즐기는 삶’이라고 답한 데 이어 24.4%의 응답자가 ‘자기계발 투자’를 욜로라이프로 꼽았다.
다양한 배움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솔로들은 출퇴근 전후 시간을 쪼개는 것은 물론, 주말을 반납하거나 때로는 휴가를 활용하기도 한다.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처럼 요즘 싱글들은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물질적·시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근로시간 단축에 여가시간 늘어나며
중국 가야금 배우기 등 자기계발 집중
같은 수업 듣는 사람들과 인맥 형성도
“단 1시간 투자로 삶의 만족도 높아져”
직장인 김모씨는 올해 새로운 악기 레슨을 받느라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를 할애한다. 그가 도전한 악기는 중국의 가야금이라고 불리는 ‘고쟁’. 가야금을 배우려고 알아보던 차에 좀 더 쉽고 빨리 배울 수 있다는 말에 고쟁으로 선회했다. 어느덧 7개월째다. 김씨는 “단순히 자기 계발을 넘어 무언가 새롭게 배운다는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크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처음에는 ‘기왕 하는 거 뭐라도 해내야 한다’는 성취욕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이미 1년여간 벨리댄스 학원도 다녔던 그는 틈나는 대로 무언가 배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인생을 음악에 비유하자면 고정적인 일상에 약간의 변주를 가미한다고나 할까. 김씨는 “100세 시대인 만큼 끊임없이 새것을 익히고 배우며 즐기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며 “나이가 들어도 뭔가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게 있어야 삶의 질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남들은 불금을 즐길 금요일 저녁, 이모씨는 친구와 만나 ‘플라워 레슨’을 듣는다. 평일 업무와 주말 휴식의 경계를 두기 위해 일부러 금요일 저녁을 선택했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받은 업무 스트레스를 꽃을 만지며 날려버리고 주말을 새로운 기분으로 맞는 것이다. 서핑·보컬트레이닝·방송댄스·와인·그림 등 여러 원데이 클래스를 경험했고 평소 좋아하던 꽃에 꽂히게 됐는데 만족감이 아주 크다. 이씨는 “단 1시간이지만 편히 집중할 대상이 생긴 후로 삶이나 업무 만족도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나가다 보면 새로운 도전 욕구도 생긴다. 2년째 권투를 배우는 유모씨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헬스장이 재미없을 것 같아 권투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잽·훅·어퍼컷·더킹·위빙 같은 기술을 하나씩 익히는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렇게 늘린 실력으로 스파링 경험을 늘려 올가을에는 ‘생활체육복싱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대회 출전이라는 목표는 폭염에도 그의 몸을 땀으로 젖게 한다.
배움을 통해 재미와 실력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씨는 투잡도 고민 중일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됐다. 꽃 수업을 들은 지 두 달여 만에 주변에 간단한 꽃 선물은 할 정도가 됐다. 나아가 가을쯤에는 홍대나 대학로 등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자신이 만든 꽃다발을 가지고 나가 팔아볼까 생각 중이다.
싱글족들에게는 배움 그 자체가 관계 맺기의 연속인 동시에 혼자라는 외로움을 달랠 좋은 도구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서모씨는 다양한 배움을 통해 어딜 가나 사람들과의 대화를 주도할 무기를 갖추게 됐다. 직장 생활 틈틈이 딴 소믈리에 자격증과 바리스타 자격증이 바로 그것이다. 와인이나 커피 같은 누구나 관심 가질 분야에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보니 아는 척이 아닌 실제 전문 지식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출근 전 주짓수를 배우며 땀 흘리는 권모씨 역시 마찬가지다. 변호사, 자산운용사 매니저,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인간관계를 넓히고 있다. 권씨는 “아직까지 생소한 분야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 주짓수 얘기를 꺼내면 대화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 흐름도 싱글족들의 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졌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칼퇴’가 가능해졌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백화점·문화센터 등도 직장인을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오후6시 이후 강좌를 30% 이상 늘렸고 이마트도 올해 가을학기부터 저녁강좌를 30%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파고다어학원은 80%만 출석해도 직장인 수강생에게 수강료 일부를 환급해주는 ‘워라밸 프로젝트’를 지난달부터 시행 중이다. 실제 출근 전 아침 수업과 퇴근 이후 저녁 수업에 수강생이 2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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