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 지난 1955년부터 1963년까지 출생한 세대를 ‘베이비부머’라고 부른다. 약 7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외식업을 운영하는 김모씨도 올해 만 63세로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다. 숱한 역경을 견뎌온 그는 요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3년 전 만 60세에 직장을 그만둔 뒤 퇴직금에 대출을 받아 가게를 시작했는데 늘기만 하는 적자에 더 이상 운영할 여력이 없어서다. 경기 불황에 2년 연속 큰 폭으로 뛴 최저임금,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 등까지 겹치면서 폐업 위기로 몰리고 있다.
그는 요즘 폐업 전에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 대안은 그나마 대출이 될 때 은행으로부터 최대한 돈을 빌려 놓는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그나마 가족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제2금융권은 물론 되는 대로 대출을 최대한 받아 놓고 (본인은) 개인파산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씁쓸해했다. 파산에 대비해 자산과 부동산도 아내 명의로 증여해놓을 계획이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이 당긴 불씨에 무너지고 있다. 문제는 단순하게 구조조정 대상인 자영업의 몰락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크다는 점이다. 바로 김씨 같은 베이비붐 세대의 파산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2018년의 베이비부머 파산은 한국 경제의 핵심축인 중산층의 또 다른 붕괴이기도 하다.
고도성장을 이끈 베이비부머는 한국 경제의 허리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적지 않은 수가 현재 저소득층으로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이들 세대는 40대 중반이었다.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그 과정에서 정리 해고자도 속출했다. 첫 번째 정리 해고자는 다름 아닌 40대 베이비붐 세대였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중산층의 붕괴가 시작됐고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내몰렸다.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베이비붐 세대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위기는 한국 경제에도 암운을 드리웠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 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외환위기 때도 견뎠던 중장년층들이 다시 한 번 옷을 벗는다. 회사 밖으로 나온 이들 가운데 성공한 케이스는 찾기 어렵다. 직장인에서 신용 불량자로 처지가 바뀐 사례도 적지 않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버티며 직장생활을 해온 베이비부머. 어떻게 보면 이들은 행복한 케이스다. 이런 이들도 만 60세가 되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했다. 1차와 2차 위기를 견디며 생존해온 이들 역시 상당수가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 산업의 폭풍 성장의 이면에는 앞서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살아남은 베이비부머와 새롭게 가게 문을 연 신 베이비부머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현재 자영업자는 약 57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이 같은 베이비부머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트리거 역할을 하면서 자영업 폐업이 올해 사상 첫 1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는데 앞으로 더 많은 베이비부머가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낀 세대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크게는 한 가정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은 나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3% 성장도 못하는 한국 경제가 이를 버텨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베이비부머의 파산 등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자영업자들의 호소는 단순 주장이 아니라 ‘절규’다.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ljb@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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