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에 패션 시계가 늦춰지고 있다. 지속 되는 무더위에 역시즌 모피를 찾는 고객들이 예년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난해 롱패딩 대란의 중심에 섰던 아웃도어도 얼리버드족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기대만큼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긴 팔, 긴 바지 등 가을·겨울용 의류를 구매하려는 고객의 손길이 줄면서 가을·겨울 신상품 입고가 보름 이상 지연되고 있다.
◇“더워서 모피도 못 사겠다” … 역시즌·선판매도 울상= 9일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올 여름은 예상치 못한 폭염에 월동 준비에 나선 고객들이 크게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얼리버드족까지 당장 닥친 더위에 무력해지면서 롱패딩이나 모피 구입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모피업계 관계자는 “옷을 사기 위해서는 시착을 해야 하는데 롱패딩이나 모피는 아무래도 길고 두껍고 덥기 때문에 시착 행위 자체도 꺼리는 것 같다”며 “백화점에 옷을 사러 오기보다는 일단 더위를 식히고 먹고 쉬러 오는 몰링족이 많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폭염으로 인해 두터운 겨울옷의 온라인 매출이 훨씬 높은 신장률을 기록한 것도 이례적이다. 현대백화점(069960) 관계자는 “보통 모피는 가격대가 높아서 직접 입어 보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또한 달라진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맘때 선판매를 시작해 재미를 본 아웃도어 업체도 깊어진 폭염에 울상이다. 지난 겨울 강추위로 롱패딩 열풍에 재고가 부족했던 아웃도어 업체들은 이번 겨울도 강추위를 예상하고 선판매를 준비했지만 전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A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롱패딩이 선판매에 들어가자마자 없어서 못 팔았던 관계로 올해 물량을 좀 더 늘렸지만 예상치 못한 폭염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면서 “초반에는 멤버십 가입 고객 위주로 판매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응이 시들해서 대책을 마련 중”이다고 말했다.
◇신상 옷도 사라졌다 … 보름 이상 지연 =가을·겨울 신상품 입고도 예년보다 보름 이상 미뤄졌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가을 상품 입고율은 이맘때 30%에 달하지만 현재 20% 수준에 불과하다. 미니멈, 지고트, 모조에스핀, 린 등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캐릭터 상품군은 예년보다 10~20% 가량이 덜 들어왔다. 1~2주 이상 전체적으로 늦춰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탁세훈 롯데백화점 여성캐주얼팀 수석 바이어는 “가을 제품은 들어와도 판매되지 않고 있다”며 “보통 잘 나가는 폴리스터 블라우스와 트렌치 코트 대신 아직도 린넨 소재만 찾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은 일부 패션 브랜드가 지난해보다 1주일 정도 시점을 늦춰 7월 말에 가을·겨울 상품 입고를 진행했다. 신세계(004170)백화점도 신상 입고 시기가 늦춰져 현재까지 전체 물량의 15~30% 가량만 입고됐다.
이렇다 보니 백화점 역시 매장에서 신상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대신 통풍이 잘되는 기능성 반팔 티셔츠나 스포츠의류만 팔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7월 16일부터 폭염이 이어지면서 하반기 신상품에 대한 수요가 확실히 줄었다”면서 “입고를 빨리 진행한 매장도 2차 오더부터는 속도를 늦췄다”고 설명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2주 전부터 화보를 준비했는데 더운 날씨 탓에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홈쇼핑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관계자는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시작하는 가을·겨울 신상품 방송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방송이 일주일가량 늦춰질지도 몰라 최종 편성될 때까지 날씨 추이를 지켜볼 방침”이라고 말했다./심희정·허세민기자 yvett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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