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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치느님과 맥주가 사랑에 빠져 '치맥', "너희는 어떻게 만났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조합 '치맥'

최초는 70년대 전기구이통닭과 생맥주 조합

림스치킨과 KFC 등장 이후 후라이드 유행

라거 맥주, 가성비, 한류 등 가세로 대히트





[스토리텔링]치느님과 맥주가 사랑에 빠져 ‘치맥’, “너희는 어떻게 만났니?”
끝을 모르고 계속되는 무더위. 요즘처럼 더운 날 생각나는 음식이 있죠.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치킨 한 조각으로 채워지는 궁극의 조합, ‘치맥’. 코끝까지 강렬한 맥주의 탄산과 미각을 자극하는 기름기의 ‘치느님’. 둘이 만나 완성된 마약과도 같은 치맥.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은 한국 사람이 있을까요?

치맥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맹목적인 수준이죠. 그런데 여러분은 우리가 언제부터 치맥을 먹기 시작했고, 또 열광했는지를 알고 계신가요?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었던 것은 전기구이통닭이 등장하면서부터예요. 명동영양센터에서 전기구이통닭과 생맥주를 함께 팔았던 것이 ‘치맥’의 시초라고 할 수 있죠. 1960년대 양계산업 발달과 함께 미국에서 원종이 수입되면서 전기구이통닭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죠. 염지한 생닭을 전기 그릴에 올려 굽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방식과 담백한 맛 덕분에 한동안 대한민국 치킨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했어요.



당시만 해도 비싼 음식이었던 전기구이통닭과 ‘고급 술’ 맥주의 만남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었던 호화로운 외식이었어요. 1970년대 제조업 노동자 일당은 3,400원 정도였어요. 전기구이통닭 한 마리 가격이 2,500~3,000원에 생맥주 500CC 가격이 450원이었으니 치맥 한 잔에 하루 일당을 온전히 써야 했죠.

그런데 우리가 아는 치킨, 바삭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은 옛날 통닭하고 거리가 멀잖아요? 그쵸? 그럼 후라이드 치킨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후라이드 치킨의 시초는 1977년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들어선 치킨 브랜드 ‘림스치킨’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예요. 림스치킨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1971년 출시된 해표 식용유였죠. 그전까지도 식용유는 있었죠. 워낙 귀하다 보니 이걸로 닭을 튀기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해표 식용유 출시와 동시에 식용유가 대량 생산되면서 튀김 음식의 널리 퍼졌고 기름진 음식이라고 해봤자 산적이나 전 종류만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이 점점 ‘느끼함’에 적응하게 돼요. 이와 동시에 1960년대 이후 국내 양계장의 생산량이 10배 이상 증가하면서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어요.

이 상황에서 1977년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우리나라 최초의 후라이드 치킨 브랜드 림스치킨이 들어서게 돼요. 림스치킨은 염지한 생닭을 4조각으로 나누고 반죽 없이 튀김가루만 묻혀 튀겨 팔았는데 이게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을 잘라 튀겨서 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물론, 인기는 엄청났어요. 크리스마스와 명절 등 주요 기념일에 림스치킨을 선물하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죠.

하지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후라이드 치킨인 크리스피 치킨은 1980년대가 돼서야 모습을 드러내요. 1984년 KFC가 한국에 상륙한 이후 치킨 시장은 크리스피 치킨의 ‘독재통치’ 아래에 들어가죠. 미국 남부 켄터키식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KFC는 엄청난 인기를 끌어요. 바삭한 튀김옷에 야들야들한 속살까지 제대로 된 ‘기름맛’에 한국 사람들이 중독돼버린 거죠.



이때까지도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으며 ‘치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치맥’이란 단어의 시작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다들 기억하시죠?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신화? 4강까지 진출한 대표팀을 위해 거리 응원이 매 경기 펼쳐졌어요. 큰 공원과 호프집 등 스크린이 있는 곳이라면 붉은 옷을 입고 앉아 응원했던 그때, 치킨과 맥주의 조합이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았죠.

왜, 축구가 곧 생명인 유럽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응원을 하잖아요? 한국에서도 호프집의 맥주와 독특한 안주 문화인 치킨이 만나 대 히트를 쳐버린거죠. 2002년 즈음 1만 개였던 치킨집은 월드컵 전후 무려 2만 5,000개로 늘어났어요.



하지만 왜? 왜? 우리나라만 유독 치맥에 열광했던 걸까요? 기름에 튀긴 닭요리와 맥주는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축구를 보는 문화도 우리만 특별한 것이 아니잖아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맥주 특성에 있어요. 여러분들 한 번씩 들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바로 이 말. 탄산향만 강하고 맥주 특유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 어떤 네티즌은 ‘무(無)맛 맥주’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여러분이 잘 모르시는 것이 있어요. 한국 맥주는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맥주예요. 맛이 없게끔 만들어진 맥주라는 말이죠. 엥? 무슨 말이냐고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맥주 주종은 라거예요. 약간의 보리향과 함께 첨가되는 홉의 향을 제외하면 거의 향이 나지 않는 맥주 종류죠. 대신 오래 남지 않는 뒷맛과 강한 탄산감으로 청량함을 자랑하는 라거 맥주는 깔끔하고 시원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특성과 맞아 떨어져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치맥에서는 이 라거 맥주가 철저히 치킨의 맛을 살려주며 느끼함을 가시게 해주는 조연 역할을 하는 거랍니다. 강한 탄산으로 치킨의 느끼함을 한 방에 날려주니까 느끼함을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한국인의 입맛과 잘 어울릴 수 있었죠.

유럽과 미국은 어떨까요? 향이 강하고 탄산이 적은 에일 맥주가 인기예요. 맥주 자체의 맛과 향이 강한 탓에 치킨과 같은 안주들과 섞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죠. 애초에 치맥 문화가 발전할 수 없는 거예요.



이해되시나요?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고 많은 ‘느끼한’ 안주 중에 왜 치킨이 맥주의 파트너가 된 것이냐? 일단 치킨이 선택된 데에는 치킨만이 가지고 있는 ‘가성비’에 이유가 있어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포만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2만원 정도면 두 세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치킨에 견줄 만한 ‘느끼한’ 음식을 찾기 힘들어요.

손쉽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IMF 외환위기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 바로 치킨점이에요.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으로 쫓겨난 가장들이 마지막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게 치킨 가게였기 때문에 이후 치킨 공급량이 급격하게 상승해요. 언제 어디에서나 전화 한 통이면 치킨을 구할 수 있었기에 쉽게 고를 수 있는 안주가 된 것이죠. 이런 가성비와 편리함이 있기에 ‘피맥’(피자와 맥주의 합성어) 등 경쟁자들이 속속 생겨남에도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거랍니다.



한류 열풍도 치맥의 확산에 한몫 했죠. 전지현과 김수현이 출연했던 ‘별에서 온 그대’에서 등장했던 치맥 기억하세요? 드라마를 본 중국인들이 너도나도 치맥에 빠졌고, 치맥을 먹으러 한국을 찾는 관광객까지 생겨날 정도였죠. 이제는 맥주의 본 고장 유럽에서도 우리의 치킨과 맥주 조합을 즐기는 곳이 있을 정도예요. 치맥을 뜻하는 영어 단어 ‘chimac’이 고유명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죠.



치맥은 이제 단순한 음식을 넘어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됐어요. 하루의 고단함을 퇴근 후 먹는 치맥 ‘한 방’으로 날린다는 직장인도 많죠. 하지만 뭐든 알고 보면 더 잘 보이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는 말처럼 치맥도 역사를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마성의 음식이 되지 않을까요?
/이종호 정순구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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