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이노션은 지난 2005년 총수 일가 지분 100%로 설립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후인 2013~2015년 지분을 차례로 매각해 지분율을 29.99%까지 낮췄다. 이노션은 상장사여서 총수 일가가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규제 대상이 되는데 지분율을 낮춰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급식사업 등을 하는 삼성웰스토리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도입 직전인 2013년 물적 분할을 통해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가 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웰스토리가 내부거래로 벌어들인 돈을 삼성물산에 대규모 배당하면서 대주주에게 부당이익을 몰아줬다고 의심하고 현장조사까지 벌이기도 했다.
당정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현행 상장 30%, 비상장 20%에서 모두 20%로 일원화하고 규제 대상 기업이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것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들을 규제 대상으로 포섭하기 위해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1일 당정 협의에서 “잘못된 지배구조나 행태”라고 규정하고 규율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30%인 이노션을 비롯해 삼성생명·현대글로비스·이마트 등 24개 상장사가 규제 대상이 된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직접 보유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삼성웰스토리·서브원 등 214개 자회사도 마찬가지로 규제를 받게 된다. 그만큼 공정위의 사정권이 넓어진다. 특히 공정위는 내부거래액이 200억원이거나 연매출액의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로 의심하고 있는데 새로 규제 대상이 될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내부거래액이 2조5,220억원에 달한다. 이 금액에서 2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대해 공정위가 잠재적 법 위반 행위로 간주하고 나서면 기업들은 꼼짝없이 행정제재를 받을 공산이 크다.
기업들이 규제를 회피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당정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은 확실한 실패보다 불확실성을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일단 규제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 상책인 셈이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지분율을 낮출 경우 경영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가 아니라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라면 규제할 필요가 없는데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근거가 되는 공정거래법 ‘제23조 2’는 사업능력·재무상태·신용도 등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공정위가 이 ‘상당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 수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하위 법령에서도 그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 않아 공정위가 당시 거래 상황을 봐 합당하다고 보면 위법이 아닌 것이고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불법이 되는 것”이라며 “규제 대상이 된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상 거래인지, 비정상 거래인지 판단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이 없는 상황인 셈인데 무턱대고 규제 대상만 늘리면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 때문에 공정위는 법원에서 패소하기도 했다. 2016년 공정위는 한진그룹을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14억원대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가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과징금 취소 판결을 했다.
기준을 20%로 일원화한 것에 대한 근거도 부실하다. 이번 당정 합의안의 기초자료를 만든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인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는 상장사 기준도 20%로 강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29.99%로 지분을 맞추는 경우를 차단하고 비상장사와 기준을 동일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애초에 비상장사가 20%로 정해진 이유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결국 특정 기업들을 규제 대상에 포괄하기 위해 기준을 강화한 것이지 ‘20%’로 정하는 근거는 딱히 없다는 의미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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