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개월간 논의를 벌여온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30일 권고안을 최종 발표하면서 경성 담합 등 전속고발제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총 9명의 위원이 의견을 제시한 결과 기존 전속고발제를 보완·유지하자는 의견이 5명, 경성 담함 등 중대한 위반 행위만 선별 폐지하자는 의견이 4명이었다. 의견이 이처럼 첨예하게 엇갈린 데는 전속고발제의 폐지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특위 참여 위원은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공정위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폐지했다가는 기업들이 경제 사건으로 사사건건 검찰에 불려다닐 우려 역시 만만치 않았다는 데서 이견이 컸다”고 말했다. 치열한 논란에도 결국 공정위는 중대한 담합행위에 한해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으로 특위 논의 과정에서 나왔던 기업들의 부담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38년 만에 폐지된 담합 관련 전속고발제=김상조 공정위원장은 21일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당정 협의에 이어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가격담합·공급제한·시장분할·입찰담합 등 중대한 담합행위에 대한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유지를 두고 법무부와 공정위가 오랜 기간 권한 다툼을 벌여왔지만 두 기관이 명시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한 것은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38년 만에 처음이다. 합의안에 따라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공정위의 고발이 없어도 검찰이 다른 고발이나 자체 인지·판단에 따라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쟁점이 됐던 자진신고자 감경제도(리니언시)의 경우 신고 창구를 공정위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검찰과 중복될 경우 기업들의 부담이 두 배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해서다. 또 리니언시의 활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자진신고자에 대한 행정처분뿐 아니라 형사처벌도 감면하도록 법 규정을 마련하고 정보도 실시간 공유하기로 했다.
◇기준 모호한 사건 배분…자진신고 해놓고도 검찰 수사 받을 수도=정부는 기업이 검찰과 공정위 모두로부터 조사를 받는 부담을 받지 않도록 수사 우선순위를 정했다.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자진신고 사건은 검찰이 우선 수사에 착수한다. 문제는 어떤 사건을 검찰이 우선 수사하게 될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시급성은 리니언시 정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며 “상시 운영할 실무협의체에서 그때그때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의 조사를 예상하고 자진신고를 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에 직면할 가능성도 상당한 셈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리니언시제도를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만큼 정부도 담합 사건을 적발하기가 어려워진다. 국책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중대한 사건이 무엇인지 예측 가능하도록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되면 제도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며 “기업인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이 올라가면 자진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형사면책 판단은 검찰이 최종적으로 하기로 한 점도 기업들로서는 상당한 리스크다. 자진신고가 들어오면 공정위는 30일간 자료 보정기간을 거친 뒤 관련 자료와 해당 자진신고자를 면책할지 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의견을 검찰에 전달한다. 검찰은 1순위 자진신고자는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2순위 자진신고자는 형사처벌을 임의적으로 감경하기로 했다. 다만 1순위 자진신고 기업의 경우에도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을 형 감면의 요건으로 추가하고 공정위의 의견도 ‘최대한 존중’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기업이 공정위의 과징금이나 시정조치 등 행정처분을 면제받더라도 향후 검찰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거나 법 위반 수준이 중대하다고 보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 “납득하기 어렵다…고발 남발될 것”=재계에서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에 대해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우선 각종 단체들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고발을 무더기로 할 경우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식의 가격담합과 입찰 ‘짬짜미’가 상당히 근절됐다”면서 “그런데도 누군가 고발할지 모른다는 리스크를 안고 경영을 해야 한다면 기업 활동 전반이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강제 조사 권한을 가지고 수사에 나서는 것도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커지게 된 점이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기업을 상대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하게 되면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들여다보게 된다”며 “검찰이 확보한 기업의 정보가 악용돼 기업들이 정치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강광우·빈난새·맹준호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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