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당국이 경직된 사고와 그림자규제 등으로 개혁의 장애물이 돼왔습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서울시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에서 이 같은 내용의 ‘반성문’을 썼다. 금융혁신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는 지적이 청와대에서 나오자 앞으로 더욱 과감한 개혁에 나서겠다고 대통령 앞에서 다짐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회사 임직원들 중에는 금융위의 이 같은 반성에 고개를 모로 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은산분리나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를 통한 신산업 육성 측면에서는 규제 개혁이 추진되고 있지만 은행·보험·카드 등 기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와 단속은 이번 정부 들어 오히려 더 촘촘해지고 있어서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27일 “금융업이 정부 면허를 받는 라이선스 산업인 점은 인정하지만 금융당국이 수수료는 물론 금리·보험료 같은 시장가격에까지 거침없이 개입하는 것은 정말 문제”라며 “규제 강도가 세지면 산업이 위축되고 산업이 위축되면 금융회사의 내적 혁신은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드산업이다. 정부가 자영업자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카드수수료를 사실상 ‘제로(0)’ 수준까지 끌어내리면서 카드업 전체가 고사(枯死) 위기에 몰렸다. 일부 금융지주사들은 카드 계열사들을 은행에 다시 합병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카드사들이 독자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국내 7개 전업 카드사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8,96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3% 빠졌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위기감에 따라 카드 업계의 신사업 진출을 허용하겠다고 제안한 상태다.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신용평가 업무 등이 카드사의 신사업 영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 국내 신용평가시장 규모가 1,000억원대에 불과해 실익이 크지 않고 사업 진출에 필수적인 각종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 법안은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 생존을 위한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카드 업계의 진단이다.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회사를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보호해야 하는 게 당국의 역할인데 채찍만 들고 나서니 예측 가능한 성장 플랜을 짜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에만 지나치게 치우쳐 균형감각을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모두 소비자 관련 조직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등 소비자 우선 정책을 앞다퉈 펼쳤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 즉시연금 일괄지급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 사건은 삼성생명이 일괄지급을 거부한 데 이어 금감원에 민원을 넣었던 당사자가 민원을 철회해 결과적으로 금융회사의 경영 불확실성만 키운 모양새가 됐다.
가격 개입에 대한 우려도 심하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를 0.05%포인트 인상했다가 당국의 경고가 나오자 3주 만에 원위치한 바 있다. 최근에는 손해보험 업계가 손해율이 커진 차 보험료 인상을 추진하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나서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겉으로는 가격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갖은 수단을 통해 압박한다”며 “절차가 정당하다면 금리 같은 가격 체계는 그 자체로 존중해줘야 은행 간 경쟁도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올해 새롭게 도입된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와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을 통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압박 등도 금융회사를 옥죄는 규제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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