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로 올해 들어 통화량(M2)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5~6%(전년 대비)에 달하면서 2·4분기 통화량이 2,6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시중 부동자금도 1,116조7,000억원(6월)으로 1년 새 75조원 증가했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국채 등 안전자산과 부동산으로 쏠리는 ‘돈맥경화 ’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침체의 전형적 현상인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은 2·4분기 2,604조4,6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늘었다. 지난 6월 기준 시중 부동자금 증가율은 이보다 빠른 7.2%로 통화량 증가율을 웃돌았다. 시중 부동자금은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 양도성예금증서,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6개월 미만 정기예금 등 단기간에 현금화가 가능한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말한다. 한국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단기 금융상품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돈맥경화’ 현상은 화폐 유통속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1·4분기 기준 화폐 유통속도는 0.685로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화폐 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돈이 상품이나 용역거래에 몇 회 사용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명목국민총생산을 통화량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최근 한은이 저금리 유지를 위해 통화량을 대거 풀었음에도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정체되면서 유통속도도 떨어진 것이다.
실제 한은이 연 1.5%라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소비와 투자는 뒷걸음질 치는 반면 채권이나 부동산 등에는 수요가 대거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전망이 좋지 않다 보니 풍부한 유동성이 생산활동과 관계없는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이라며 “생산적인 부분으로 돈이 흐를 수 있도록 적극적인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능현·서민준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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