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3대 경제정책 가운데 공정경제를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정경제를 강조해도 대기업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공정경제 정책은 저희 입장에서 기회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제대로 테이블에 앉아 얘기할 기회가 온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건준(사진) 벤처기업협회장이 30일 제주에서 열린 ‘제18회 벤처썸머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내 5대 대기업 그룹사(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와 벤처기업협회가 공동으로 한국형 혁신생태계 조성을 논의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미팅으로 기술 탈취 방지와 정상적인 인수합병(M&A) 문화 조성 등 업계에서 대기업에 꾸준히 제기하던 요구사항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안 회장은 “우리나라에는 수준 높은 벤처기업이 없어 대기업이 제값 주고 M&A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대기업 스스로 (다른 M&A 대상 기업들을 상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의 갑질을) 뜯어고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오너”라며 “오너가 ‘기술 탈취 하지 말고 인력 함부로 때우지 마라’고 직접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벤처기업협회가 5대 그룹사와의 협의체를 구성하려고 나선 것은 ‘민간 주도’로 상생생태계를 조성해야 혁신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안 회장의 생각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민간 주도로 가야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향후 1년을 ‘스타트업 살리기 기간’으로 정해 스타트업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그는 “협회 차원에서 지난해 스타트업위원회를 만들고 크라우드펀딩과 O2O(Online to Offline) 관련 규제 개선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겹겹이 쌓여가는 규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느낀다”며 “규제 발굴 시스템을 구축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제약하는 규제를 발굴하고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협회를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해 창업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선배 벤처기업이 연달아 1주에 1명 이상 멘토로 참여하는 캠페인을 벌여 후배 스타트업과의 접촉면을 넓힐 예정이다. 첫 멘토로는 안 회장 본인이 직접 나선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에 대해서는 창업지원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스케일업(초기 기업을 키워 강소기업으로 육성하는 것) 정책은 미흡하다고 논평했다. 그는 “창업기업 육성 측면에서는 정부가 잘하고 있지만 균형미가 없다는 점에서는 잘 못하고 있다”며 “이미 한국에는 6만5,000개 정도의 벤처기업이 있는데 정부에서 이 기업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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