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한화손해보험 본사. 손해사정 업무 담당 직원의 컴퓨터에 탑재된 인공지능(AI) 자동견적 탭이 깜빡거렸다. 담당 직원이 클릭하자 서울의 한 사고현장에서 보내온 차량 사진이 여러 장 떴다. 차종은 ‘올 뉴 모닝’으로 오른쪽 앞문이 찌그러져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AI 자동견적 프로그램에 보내온 사진을 입력하자 3∼4초 만에 수리시간(1시간30분)과 수리비(46만9,753원)가 산정됐다. 정비업체에서 청구한 금액은 45만5,248원으로 AI가 산출한 수리비가 1만원가량 비쌌다. 이번에는 그랜저TG 왼쪽 앞문이 찌그러진 사진이 여러 장 전송됐다. 단 몇 초 만에 수리비 30만3,858원이 뚝딱 산정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비업체가 자동차견적프로그램(AOS)에 올린 견적서를 보험사 담당자가 수기로 일일이 손해사정해 금액을 결정해야 했다. 수리비 지급까지 시간이 적잖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6월 이후 이 회사 손해사정 담당 직원들의 일처리 속도는 한결 빨라졌다. 금융비서 노릇을 톡톡히 하는 ‘AI 이미지 견적’ 프로그램 덕분이다. 한화손해보험 관계자는 “아직 오롯이 AI 자동견적에만 근거해 보험금을 지급한 사례는 없고 직원의 손해사정 결과와 비교해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며 “연내 100만원 미만 (경미사고) 보상건은 AI 이미지 견적으로 100% 자동화하고 이에 따른 유휴인력은 (100만원 이상의) 고도보상에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쓸 만한’ AI 금융비서가 보험사 등 금융사 전반의 업무 효율화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직원 손을 일일이 거치던 업무를 자동화해 시간 절약은 물론 사업비 절감 효과까지 기대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한화손해보험은 올 1월 중국 내 2위 보험회사인 핑안보험을 방문해 AI 이미지 자동견적 프로그램의 벤치마킹에 나섰다. 핑안보험은 약 255억원의 개발비를 투자해 AI 손해사정 시스템인 ‘즈넝산페이’를 개발한 곳이다. 한화손해보험은 이후 국내 빅데이터 관련 스타트업 기업인 애자일소다와 손잡고 업계 최초로 AI 이미지 견적 시스템 개발 및 운영에 나섰다.
현재 25개 차종에 대해 2,000여개의 룰베이스 작업을 완료했다. 같은 범퍼 교환이라도 차종에 따라 라이트를 떼고 작업해야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롤베이스는 이 같은 세세한 케이스를 차종과 차량 연식별로 일일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위해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보상센터장들이 20만장에 이르는 각종 차량사고 사진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했다. 하반기에는 차종을 25개로 늘리고 룰베이스 역시 2만개 이상 확보해 AI 딥러닝 기술력을 높일 계획이다. 한화손해보험의 행보에 메리츠화재·KB손해보험 등의 보험사도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시스템 개발비용 등 제반 요소 때문에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마침 보험개발원이 삼성SDS와 손잡고 ‘AI 이미지 견적 시스템’의 본격 개발에 착수한다. 보험개발원은 이 시스템 개발이 완료되면 보완작업 후 전체 손보사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부터 사고 시 차량 소유주가 차 파손 사진만 올려도 스스로 견적을 내고 수리 여부를 결정하는 셀프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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