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북한 땅을 처음 밟은 것은 지난 1998년의 어느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현대그룹이 추진하던 금강산 관광 사업의 첫 준비를 위해 고(故) 정몽헌 회장을 따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고려항공을 타고 내린 평양공항에서는 통일의 열사로 열렬한 환영을 받아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북한 당국에서 제공해준 벤츠를 타고 콘크리트 고속도로를 따라 원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향했다. 남쪽에서는 아무도 가보지 못했던 이 길이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서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업을 위한 첫 협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북녘에 다시 가게 된 것은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얼마 전 현지에서 일하게 될 ‘투어 리더’의 인솔을 맡게 되면서다. 투어 리더는 일종의 관광 가이드를 말하는데 현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하려면 금강산의 지리와 문화·역사 등을 숙지해야 했다. 일주일간 남북의 젊은이들이 함께 지내며 결국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라는 묘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일주일간의 금강산 현지교육을 마치고 경포대에서 우리만의 작은 해단식을 했다. 해변에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데 누군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두 소절 후 모두가 따라 하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데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탓에 마지막 구절을 그 누구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실향한 것도 아니고 북녘에 부모 형제를 두지도 않은 젊은 건아들이었건만 치닫는 감정을 좀처럼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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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와 감정을 추스르고 보니 ‘통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은 설화 속 망부석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 같지만 어느 날 불현듯 다가오면 이처럼 벅차고 설레는 일이 될 것이다.
통일은 국제 정세의 거대한 힘의 산물로 이뤄지지만 실은 우리네 삶의 작은 변화에서도 시작된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필자가 어느 날 불쑥 ‘민간사절’로 북한에 다녀오게 된 것처럼 누구나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달라질 남북 관계에 대한 희망에 많은 사람이 들떠 있다. 얼마 전에는 대동강맥주와 옥류관 냉면의 인기에 온라인이 흠뻑 달아올랐다. 서울역을 출발해 평양을 거쳐 시베리아를 여행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우리의 작은 의식 변화 속에 평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된 것이다.
이제 곧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2008년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도 10년 만에 재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998년 남쪽에서 불렀던 우리의 소원을 북에서 부를 수 있는 그날이 다시 온다면 20년 전보다 더 목청껏 밤새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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