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같은 차에 타고 북한 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평양시내를 내달린다는 게 정말 꿈만 같습니다. 올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남북 정상이 11년 만에 다시 평양에서 만난 18일 시민들은 TV로 생중계 화면을 지켜보며 두 정상의 만남을 축하했다. 지난 4월 판문점에서 진행된 1차 정상회담보다 다소 관심은 떨어졌지만 잇따른 두 정상의 만남에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특히 이번에 경제인들이 대거 방북한 것과 관련해 남북 간의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비핵화를 놓고 북미가 교착상태에 빠진 점을 의식한 듯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벤트에만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1호기가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오전9시49분. 서울시내 곳곳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민이 TV 앞으로 모여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평양으로 입성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한 ‘깜짝 카퍼레이드’는 단연 압권이었다. 남북 정상이 함께 오픈카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이 함께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평양시민은 물론 서울시민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최모(55)씨는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벌써 대통령 내외가 평양에 가고 환대도 받는 게 당장 통일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환호했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박모(48)씨는 “문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북한 주민들을 만나는 장면은 남북 단일팀의 스포츠경기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면서 “통일이 결코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목포로 내려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던 교사 박모(39)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제인들이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했는데 남북이 하나 되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며 “남북이 갈등하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한계가 있지만 하나가 돼야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하지만 1·2차 정상회담과 북미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속도가 늦춰진 점을 염두에 둔 듯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모(74)씨는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로서 그동안의 북한 행보를 보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며 “대통령 혼자 나서서 정상회담한다고 평화체제가 생각처럼 빨리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인을 배웅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은 김모(58)씨는 “경제인들을 대거 이끌고 갔는데 북한에만 퍼주기식 협력을 하면 안 된다”며 “지금 당장 먹고사는 일이 고민이라서 평화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최모(40)씨는 “북미 관계를 해결하지 않은 이상 남북 정상의 만남은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정치적인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은 북미 간의 문제가 잘 풀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최성욱·서종갑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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