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창원지방법원은 조선·해양 플랜트 기자재를 생산하는 태경중공업의 기업회생절차를 개시했다. 태경중공업은 조선업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다 주력사업을 핵융합 실험로 부조립장비 등으로 틀었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이런 내용을 담은 사업재편계획을 제출해 지난해 3월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이다. 구조조정에 부닥칠 상황에 앞서 사업을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1년 4개월 만에 법정관리 신세로 전락했다. 태경중공업만의 문제일까.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016년 8월 원샷법 시행 이후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기업 85곳 중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된 기업은 1~2곳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몰까지 1년을 앞두고 실적이 85개 기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것에 더해, 결국 기업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하겠다던 원샷법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샷법의 한계는 2015년 법 제정 논의 때부터 예견됐었다. 당시 재벌에 특혜가 될 수 있다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정부는 원샷법의 적용 범위를 공급과잉 업종으로만 제한했었다. 대기업의 변칙적 지배구조 강화와 2·3세 승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 결국 국회 문턱을 넘기 위해 공급과잉을 가리는 깐깐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신사업에 진출하더라도 상법과 공정거래법상의 특례를 받을 수 없도록 법이 제정됐다. (★본지 2015년 5월 21일자 1·3면 참조)
원샷법을 활용하는 기업이 중소기업에 쏠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혜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원샷법을 활용할 수 없었다. 산업부 산하 사업재편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공급과잉 업종으로만 제한돼있는 것에 더해 자칫하면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기업들이 그동안 원샷법 활용을 꺼려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업재편에 나설 수 있는 통로가 좁은 것은 원샷법의 모태가 됐던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의 경우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법’을 통해 기업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었다. 2013년부터는 사업재편에만 맞춰져 있던 범위를 신사업 설비투자 등까지 확장한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시행하고 있다. 기업실증특례제도나 그레이존 해소 등을 통해 기업 맞춤형 규제개혁 플랫폼도 담겨 있다. 대상도 벤처기업부터 대기업까지 가리지 않는다.
미쯔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MHPS)가 산업경쟁력 강화법을 통해 사업재편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MHPS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미쯔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가 화력발전설비 부문을 떼어내 설립한 회사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와 독일의 지멘스,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이 휘어잡고 있는 가스터빈 시장을 뚫고 들어간 기업이다. 이 밖에도 스미모토금속, 신일본제철, 도요타, 닛산자동차, 샤프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 산업경쟁력강화법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다.
IB업계에선 최근 들어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등 제조업의 체질 개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원샷법의 활용 통로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실채권(NPL) 관련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도를 벗어나면 특히 부산·울산·경 상남도 지역에선 시장에 나왔다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멈춰있는 공장이 널려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도 “최근 들어 M&A와 구조조정 자문 등의 일이 부쩍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지난 3월부터 관련 TF를 구성해 제도개선 등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오는 10월 일몰 연장 등의 존속 여부나 확대개편 등의 필요성에 대한 정부방침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IB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반재벌 정서 때문에 결국 여당에서 이와 관련해 전향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가뜩이나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우리 제조업의 사업재편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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