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해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법률안을 마련했지만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통신시장 1위업체인 SK텔레콤에 월 2만원대 요금제 상품을 의무출시하도록 하는 내용과 관련 사기업의 가격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 법안이 실제 통과될 가능성은 낮지만 이동통신업계에서는 내년 시작되는 5G요금제 압박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보편요금제 입법안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기국회에서 본격 논의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추석 이후 틈틈이 의원들에게 해당 법률안의 통과 필요성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대해서는 여야 의원들 모두 공감대가 있다”며 “필요한 경우 의원들을 대상으로 추가 설명을 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보편요금제는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통신비 기본료폐지의 대안으로 나온 정책이다. 통신비 기본료는 법률이 개정돼야 폐지할 수 있는데 여야간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대안으로 선택약정 25% 상향 조정과 함께 보편요금제 도입을 꺼낸 것이다. 보편요금제는 현재 정부논의안 기준 2만원대 요금에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보다 1만원 이상 통신료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통사들은 요금제 개편을 시작했다. 통신업계 3사는 3만3,000원의 요금으로 1~1.3GB의 데이터와 무제한 음성통화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은 것. 특히 선택약정할인(25%)을 적용하면 월 2만4,750원으로 보편요금제와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정부로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됐지만 보편요금제 추진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보편요금제와 유사한 요금이 현실화됐는데 사기업의 가격결정권을 침해하는 법률안을 굳이 마련할 필요가 있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노웅래 과방위원장이 최근 보편요금제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한 점이 고무적이지만 여당 의원 일부조차 보편요금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며 “표대결로 간다면 법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언급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편요금제가 현실화되기보다는 내년 5G 요금제의 압박카드로 쓰이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통신사들은 내년 3월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목표로 잰 걸음을 걷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5G 장비업체 선정을 마쳤고 다른 통신사들도 곧 장비업체를 선정한 뒤 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5G가 상용화되면 소비자에겐 가격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이통사들은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줄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데 5G를 장기적으로 수익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통신사들의 5G 전략은 LTE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무제한 요금제를 바로 도입하지 않고 이용자가 더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정부와 일부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5G 요금제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보편요금제와 연결시킬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동통신업계의 한 임원 역시 “5G요금제가 가시화되려면 아직 멀었다”며 “초기엔 LTE와 큰 차이가 없어 비싼 요금제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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