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웜우드가(街) 육교 위에 한옥 집이 통째로 날아와 박혔다. 흡사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회오리바람에 날아간 주인공 도로시의 집을 보는 듯하다. 혹시나 바닥으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아슬아슬하다.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서도호(56·사진)의 공공미술 작품 ‘브릿징 홈,런던(Bridging Home, London)’이 24일(현지시간) 런던 이스트엔드 웜우드가에서 공개됐다. 런던시가 8년째 진행하고 있는 ‘도시조각 프로젝트’와 런던의 공공예술 축제인 ‘아트나잇’의 공동 커미션 작품으로 서 작가가 런던에서 선보이는 첫 대형야외 설치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은 이날부터 약 6개월간 전시돼 런던 시민을 비롯해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작품이 설치된 육교는 복잡한 런던 시내의 유리건물 사이를 가로지른다. 기와지붕과 나무기둥, 문살 등을 갖춰 한국의 전통가옥임을 보여주는 집은 육교에 비스듬히 반쯤 걸쳐 아래로 떨어지는 형태로 설치됐다. 육교 위 집 주변은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집’은 서도호 작가의 대표적 소재이며 일종의 자화상이다. 동양화의 거장인 서세옥 화백의 아들로 창덕궁 연경당(演慶當)을 본 떠 지은 서울 성북동 집에서 자란 그에게는 한옥이 익숙했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으로 유학 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을 거쳐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한옥의 경험과 서양식 아파트 사이의 괴리감,낯섬,불편함 등을 더듬어 1990년대 중반부터 ‘집’ 작업에 몰두했다. 옷도 ‘짓는’ 것이고 집도 ‘짓는’ 것이라며 작가는 손바느질로 집의 세세한 형태를 그리는가 하면, 속이 반쯤 보이는 천으로 집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삼성미술관 리움 개인전 때는 성북동 한옥의 모형이 미국 뉴잉글랜드의 아파트 모퉁이에 날아와 박힌 형태인 ‘별똥별’을, 201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기념 프로젝트로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을 선보였다. 평소 작업에 대해 서도호 작가는 “한옥은 반쯤 열린 공간인 반면 서양의 공간은 외부와 단절된 세계 같았다”며 “충돌의 장면이 갈등과 대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강조하고자 한 것은 ‘연착륙’이 중요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 대해 서 작가는 “‘짓는다’라는 것은 ‘공간’이라는 단어보다 더 의미있는 것으로, 단순히 물리적인 것보다 은유적이며 정신적인 것”이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양질의 에너지와 역사, 인생과 기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나에게 제 2의 고향인 런던에서의 공공미술 전시 작업은 굉장히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면서 “‘브릿징 홈,런던’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만큼 많은 분들에게 같은 느낌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전시를 기획한 파토스 우스텍 큐레이터는 “런던 도심의 가장 복잡한 구역의 고층빌딩 건물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한국 전통가옥을 보는 순간 관람객들은 ‘집’에 대한 본질적인 감정을 발견하고 그에 연결된 각자의 소속감, 추억들이 마음속에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도호는 지난 2001년 제 49회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고 2013년 월스트리트저널 매거진의 ‘예술 부문 올해의 혁신가’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제27회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미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와 관련된 기금은 지난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국예술위원회의 협약으로 조성됐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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