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대규모 3차 관세 폭탄을 주고받은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무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본보기로 내세워 중국의 불공정무역에 대한 비난 수위를 한층 높임에 따라 양국 무역전쟁이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신냉전’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양국 모두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는 만큼 난타전 양상의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에 끝나기보다는 15라운드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다만 거친 타격전 상황에서도 양국이 타협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협상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멕시코에서 거둔 무역 협상 성과를 중국에 적용할 공산이 크고 집권 2기 리더십 손상을 원하지 않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적절한 시기에 미국에 FTA 협상 카드를 내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 무역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 안보 분야의 양국 관계 악화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40년간의 중미 수교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며 “양국은 평등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이날 서로에게 2,000억달러와 600억달러 수입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통상 갈등이 격화하고는 있지만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은 피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왕 국무위원은 “중국은 협상을 통해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지만 미국은 새 담판을 하기 직전 대규모 관세를 부과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성의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중국은 미국의 2,000억달러 대중 무역 관세 부과 개시를 앞둔 이날 미중 무역 백서를 발표하며 미국의 부당한 보호무역주의의 맹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3만6,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백서에서 중국은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의 59%가 외자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며 “세계 평화와 번영과 밀접한 양국 무역 관계에서 협력이 유일할 선택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이 향후 미국과 양자투자협정(BIT) 협상을 재개하는 한편 ‘적절한 시기’에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BIT와 FTA를 통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양국 무역 갈등의 탈출구를 찾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현재 중국은 25개 국가 지역과 17개 FTA를 체결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시 주석의 강력한 리더십에 오점을 남길 수 있는 굴욕적인 타협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미국과의 FTA를 제안하며 무역 전쟁을 적절한 수준에서 종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양국의 무역 보복전이 당분간 신냉전 분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중 무역 대결이 군사·외교 분야로 확대되는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이 최근 미국의 2만7,000톤급 강습상륙함 와스프의 홍콩 기함 신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이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는 데 관여한 인민해방군 장비발전부와 책임자에 대해 제재를 가하자 지난 22일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25~27일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던 중미 합동참모부의 대화도 취소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과 중국은 서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기 때문에 미중 무역 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면서 “과거 소련에 비해 경제 규모 면에서 더 커진 중국이 양보와 타협보다는 미국과의 신냉전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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