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사모펀드(PEF)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투자 걸림돌이었던 10% 지분보유 규정과 대출 제한이 사라지게 됐다. 여기에 투자자 수도 확충되면서 PEF의 역차별 ‘3종 족쇄’가 한꺼번에 풀렸다. 당국의 이 같은 행보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규제 일변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써 PEF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그간 국내 PEF가 오히려 해외펀드에 비해 역차별받는 측면이 있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PEF가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제도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현대차를 공격하던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처럼 해외 PEF들은 1%가 넘는 지분만으로도 투자 기업의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압박하지만 국내 PEF들은 10% 지분보유 규제(10%룰) 때문에 사실상 시가총액이 큰 대기업 투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달리 이원화된 운용규제가 국내 PEF의 ‘기업 생태계 혈맥’ 역할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PEF는 10%룰 규제로 중장기 성장자본 투자에 적합한 메자닌(채권과 주식의 중간에 있는 상품) 투자가 제한됐고 대기업의 경영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대기업 오너와 외국 자본’ 구도로 형성되면서 국내 운용사는 아예 배제돼왔다. 또 대규모 인수합병(M&A)시 다양한 방식의 인수금융 활용이 필요하지만 PEF 10%룰과 대출 규제 등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 적극적 M&A 추진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금융위가 헤지펀드에만 허용하던 대출을 PEF도 받을 수 있게 한 점도 이 때문이다.
해외에서의 PEF 규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PEF가 그림자 금융 영역에서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등록·보고 의무만을 두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10%룰뿐 아니라 PEF의 기업대출이 금지돼 있으며 헤지펀드는 경영 참여를 제한받고 있다. PEF 요건 역시 미국 전문투자자 PEF의 경우 투자자 수 제한이 없고 소수투자자 PEF는 100명 이내다. 유럽연합(EU)은 투자자 수 제한이 아예 없다.
기관전용 PEF를 도입한 이유 역시 금융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관전용 PEF는 업무집행사원(GP)에 대한 검사·감독 능력이 있는 유한책임사원(LP)으로부터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PEF 운용규제가 일원화됨에 따라 현행 PEF가 기관전용 PEF로 전환된다. 투자자 수를 49명에서 100인 이하로 확대하면서 투자자 기반이 확대되는 점도 PEF 투자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PEF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판단도 이번 규제 완화의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PEF는 운용의 특수성 때문에 여전히 ‘기업 사냥꾼’ ‘정리해고의 주체’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미국 학술지가 1995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3,874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PEF 투자기업과 비투자기업의 성과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PEF가 기업 성과와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PEF 투자기업은 비투자기업에 비해 매출 증가액은 평균 150만달러, 고용 증가분은 5.3명 높았다. 최근 PEF가 인수한 바디프랜드도 인수 후 3년 동안 매출액은 3배, 영업이익은 4배, 고용은 무려 9배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PEF의 긍정적 역할론에 힘이 실리면서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6월 말 기준 헤지펀드는 310조원, PEF는 66조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번 PEF 개편안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김수민 유니슨캐피탈 대표는 “금융시장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PEF가 가장 역사가 짧은 업종인데도 크게 발전을 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시장에서 수요가 있었다는 뜻”이라며 “이번 규제개혁 방향이 PEF의 순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인데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관전용 PEF는 금융 소비자 보호와 투자 촉진이라는 상충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수”라고 평가했다.
PEF 업계는 환영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경영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PEF가 적극적으로 기업의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PEF는 그동안 10% 지분 규정으로 인해 대기업에 대한 경영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이번 규제 완화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투자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본격화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경영 개입이 확산될 것을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국내 PEF가 엘리엇과 같은 기업 사냥꾼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만큼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제도’ 등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도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성규·김상훈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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