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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없이 혁신성장 없다]①실패 용인...'엉뚱한 연구'라도 지원 길 터줘야 노벨상 나온다

<중>질적도약 시급한 과기 R&D-패러다임 대전환 7대 제언

②부처 장벽없애 중복사업 차단

③정량평가 줄이고 동료평가로

④전문가 주도 시스템 구축 필요

⑤연구비 집행에 융통·자율성을

⑥인공지능·빅데이터 적극 활용

⑦부실학회 등 자정노력 나서야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이 내년에 20조원을 돌파한다. 지난 50년간 1만배 이상 커지며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로서 경제발전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4차 산업혁명 융·복합 시대를 맞아 양적성장을 넘어 퍼스트무버(선도자)로 치고 나가기 위한 질적 도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승자독식이 가속화되고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로 우리 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등은 모두 기초과학에 대한 과감하고 혁신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파생된 응용·과학기술로 산업 혁신을 꾀하고 신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로 지난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노벨상 후보 명단에 올랐던 박남규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는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미래기술의 메가트렌드를 읽고 와해기술이 가능한지 징후를 알아차리고 다양한 기술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의 인프라 격인 국가 R&D 혁신을 위한 7대 조건을 제언으로 담아봤다.





①장벽을 허물고 혁신의 꽃을 피워라=부처·연구소·대학·기업·전공 간 장벽이 시너지를 막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컨트롤타워라고 하지만 국가 R&D가 부처·기관별로 관장하는 곳이 다르고 세부과제도 6만1,000개가 넘어 리더십 행사가 어렵다. 정남식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은 “과기정통부·산업부·방사청·교육부 등 부처별로 R&D 예산을 따기 위해 세부사업 수를 늘리게 되고 유사·중복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세부단위에서 선정·평가·관리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R&D 방향 설정과 추진 효율성 면에서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②‘와셋’ 교훈 삼아 선정·평가 혁신하라=연구 성과를 따질 때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논문과 특허 등 정량평가 비중을 줄이고 우수 과학자들이 참여한 동료평가(peer review)로 전환하는 노력을 펴야 한다. 다년과제라도 실상 매년 정해진 연구비를 소진하는 경직된 구조도 혁파해야 한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만 요구하니 가짜 SCI 저널과 와셋 등 해적 학술단체의 유혹에 넘어가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과제 선정·평가 시 동료평가로 전환하고 연차평가 등을 없애고 자율성을 줘 톱다운식 패스트팔로어에서 벗어나 보텀업 퍼스트무버로 나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③전문가 주도 시스템을 구축하라=과제를 심사할 때 아무리 우수한 심사위원도 같은 대학 등이라면 배제되고(상피제) 심사 며칠 전에 갑자기 연락해 나오라는 식은 곤란하다. 공정성에만 치우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 연구자 지명도와 로비에 좌우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우수 연구자들이 심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명단도 공개하며 위원장이 과제가 종료될 때까지 멘토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④노벨상은 한 우물을 파거나 엉뚱한 연구에서 나왔다=지난 201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SB) 교수는 당시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1990년대 니치아공업이라는 중소기업에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할 때 ‘미쳤다’고 하는 연구를 끊임없이 시도한 게 노벨상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연구 과정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결과가 아예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새로운 발견의 실마리가 되거나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이 예정된 쉬운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고 그대로 진행한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은 “연구과제를 하다 방향이 바뀌면 그것을 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예정대로 연구비를 집행할 수밖에 없다”며 “실패가 용인돼야 고위험 연구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⑤사람이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 동력=‘장기·안정·자율’ 연구를 선호하는 과학기술인의 연구 의욕을 고취하고 정부의 신뢰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대학 산학협력단 등 지원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연구 규정을 간소화하는 등 연구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연구비 집행에 유연성을 줘야 한다. 석·박사 학생과 박사후연구원의 생활 보장과 교수 갑질 근절 등 연구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성장동력 확충의 핵심 과제다.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은 “(2011년 설립 당시 출연연에서 유일하게) 예산을 통으로 받아 연구단(현재 29개)에 적절히 배분했으나 올해부터 오히려 융통성이 줄었다”며 “(10년간 지원하기는 하나) 중간에 성과도 일일이 보고하고 교수들이 유수 저널에 논문을 쓰느라 장기 연구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⑥AI·빅데이터를 활용하라=미국·중국처럼 국가 R&D 현장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과기정통부가 국가 R&D를 통한 각종 데이터를 통합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오는 12월에 개소하고 연구장비 공유에도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황유경 GC녹십자랩셀 세포치료연구소장은 “현행법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을 통한 건강·의료 빅데이터를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만 활용할 수 있어 바이오 R&D에 AI를 접목하기 쉽지 않다”며 “IBM 왓슨이 몇몇 병원에 도입된 뒤 별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다”고 전했다.

⑦도덕적 해이 벗고 삶의 질 개선하라=허위 학술단체인 와셋에 무려 22번이나 참가한 교수도 있고 서울대·연세대 등 유명 대학 교수도 부실 학회인지 알면서도 다수 참여해온 것은 큰 문제다. 또한 미세먼지, 치매, 보건의료, 가습기 살균제, 스마트 교통 시스템, 미세플라스틱, 지진, 원전 안전 등 성과를 내야 한다. 미세먼지·치매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총 10개의 융합연구단이 있으나 아직 씨 뿌리기 수준이다. 노 이사장은 “과학기술인이 연구윤리 자정 노력을 펴고 성장동력과 삶의 질 제고라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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