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이나 감정인이 사건의 관할 법원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거주지와 가까운 법원 내 마련된 화상증언실에 출석해 영상으로 증언하는 원격영상재판 제도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법원이 약 5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원격영상재판은 2016년 9월부터 시행하고 있으나 2년 동안 고작 10여건 정도만 활용될 정도로 외면받으면서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는 오는 2일 열리는 제9차 회의에서 원격영상재판 제도의 실태와 실효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법발전위원회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법제도 개선방안을 심의하기 위해 현직 판사와 대형 로펌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15명으로 구성된 대법원 산하 회의 기구다.
원격영상재판은 지난 2016년 9월 민사소송법 제327조 2항(비디오 등 중계장치에 의한 증인신문) 개정으로 현재 민사소송의 증인신문에 한해서 전국 법원에서 가능하다. 법원은 지난해 이를 위해 전국 525개 법정과 72개 증언실에 웹카메라 등 법정용 영상장비와 TV, 화상회의 시스템 서버, 음성변조 프로그램 등 시스템 구축에만 49억원이 넘는 예산을 썼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장비들은 노후 문제로 인해 5년마다 설비를 새로 구축해야 하며 이때 들어가는 예산도 최소 3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막대한 돈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이용률은 미미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6년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2년 간 원격영상증언 지원을 요청한 사례는 10여건 정도다. 결국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장비를 교체하는 데 혈세를 낭비하게 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처럼 원격영상재판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로는 상대적으로 증인신문이 적은 민사소송의 특성과 법관들의 비선호 등이 꼽힌다.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증인이나 감정인에 대한 영상신문만 허용되고 재판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는 여전히 법정에 직접 출석해야만 한다”며 “원고와 피고에게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지 않는 한 예산 대비 제도의 활용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법원내부망인 코트넷에서도 원격영상재판에 대한 비판이 직접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차성안 수원지법 판사는 코트넷에 “영상재판은 출석의 편익을 제외하면 일선 판사들이 보다 충실히 재판을 하고, 당사자들이 직접 판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9월말까지 온라인을 통해 각급 법원 판사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대표 판사 100여명을 대상으로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사법발전위원회는 결과를 토대로 원격영상재판 제도의 도입 취지와 현황, 보완점 등을 검토해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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