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의욕 꺾인 기업…미래 투자도 ‘암울’=가장 심각한 대목은 설비투자 위축이다. 기업투자가 이뤄져야 고용이 늘어 내수진작 등의 경기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설비투자는 지난 3월 7.6% 감소한 후 4월(-2.5%), 5월(-2.8%), 6월(-7.1%), 7월(-0.6%), 8월(-1.4%) 내리 하락했다. 8월 설비투자가 전월 대비 1.4% 줄어든 것은 반도체 공장 등에 들어가는 특수산업용 기계투자가 줄어든 탓이 크다. 운송장비 투자는 4.6% 늘었지만 특수산업용 기계 등 기계류는 3.8% 줄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의 설비투자가 감소하며 전체 투자를 깎아 먹은 점은 ‘더 이상 반도체에 기댈 수 없게 됐다’는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기업들의 미래 설비투자를 가늠할 수 있는 기계류 내수 출하 역시 8월 6.6% 감소했는데 이는 2월 3.8% 줄어든 후 7개월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투자가 줄었다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경기 자체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건설투자가 급격히 위축된 점도 대규모 실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8월 건설기성은 전월 대비 1.3%, 전년 동기 대비 6.2% 감소했다. 건설수주는 32.1% 급감했다. 최근 10년간 건설업 취업자 수 추이를 감안하면 170만명이 적정선이지만 7월 현재 200만명으로 과잉고용 상태다. 주 실장은 “건설경기 위축이 최소 30만명의 대량 실업자를 쏟아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허리띠 졸라매는 가계…고용쇼크에 내수위축 ‘악순환’ 우려=투자와 고용 위축은 통상 소비부진으로 이어진다. 올 4월과 5월 전월 대비 각각 0.9%, 1.2% 감소했던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가 6~7월 들어 0%대나마 반짝 상승 흐름을 보였지만 8월에는 이마저도 그치며 보합에 머물렀다. 그나마 정부발(發)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 효과를 일부 본 승용차 판매가 늘면서 내구재 판매가 2.5% 증가했을 뿐 음식료품·신발·가방과 같은 서민들의 실생활 ‘장바구니 경제’에 해당하는 비내구재·준내구재 판매는 동반 하락 반전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기업들의 내수부진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 내수기업의 업황 BSI는 67로 전월보다 2포인트 떨어져 3개월 연속 하락했다. 또 기업들은 ‘경영 애로사항’으로 내수부진을 첫손에 꼽았다.
◇반도체 ‘쏠림’ 심각…다른 주력 업종 수출은 줄줄이 꺾여=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표면적으로 견조한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8.2% 줄었지만 하루 평균 수출로는 역대 최대인 25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처음으로 6,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품목별 수출을 뜯어보면 ‘사상 최대’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불안감을 더 키우고 있다. 반도체 수출 쏠림이 심화하고 있고, 반대로 자동차와 스마트폰·철강·선박 등 수년간 한국 경제를 떠받쳤던 주력 산업들의 수출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전체 수출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4.6%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7.6%보다 7%포인트 늘어난 결과다. 반도체 수출 규모 자체도 전년 대비 28.3% 늘었다. 반면 디스플레이(-12.1%), 자동차(-22.4%), 철강(-43.7%), 선박(-55.5%) 수출은 같은 기간 대비 크게 감소했다. 신 부문장은 “글로벌 경제가 4·4분기를 정점으로 이후에는 둔화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수출이 내년에도 올해만큼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 “반도체도 수출 증가율 측면에서 추가 성장보다는 둔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쏠림 현상이 한국 경제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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