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003530) 사장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으로 확정되면서 기금운용본부는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주 신임 본부장은 대형 증권사를 이끌면서 업계의 부적절한 관행을 타파하는 파격 행보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CIO의 본업인 투자 경험이 적고 증권사 대표 시절 내부 직원들과 마찰을 빚어온 전력 탓에 불거진 우려를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주 본부장은 증권 업계에 재직하던 시절 보여준 개혁적 행보와 국민연금 투자에 대해 현 정부와 교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서류심사 초반부터 20등이었다가 5등으로 올라섰고 최종면접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최종 5인의 후보 중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와 1~2위를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주 본부장은 전략기획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화투자증권 사장을 지내며 매도 리포트 등 각종 개혁정책으로 이목을 끌었다.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과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을 역임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1차 청문회 당시 참고인으로 출석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한다”는 발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관련기사
그러나 주 본부장은 자산운용 경험이 적고 조직관리 측면에서 약점을 갖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2015년 홍콩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로 2,000억원 손실이 났고 회사가 휘청일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화투자증권 직원 350명을 구조조정하고 지점장들이 피켓시위를 할 정도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조직의 개혁을 내세웠으나 일반 직원까지 그를 비난한 것이다. 국민연금 본부장 인선 과정이 청와대 개입설과 함께 한 차례 무산되고 재공모에 들어간 초반부터 내정설이 퍼진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주 본부장이 국민연금 CIO로 결정되면서 재계와 투자 업계는 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평소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오너 위주의 지배구조가 기업 가치 상승을 막는다고 비판해왔다. 다만 국민연금 투자에 대해서는 공공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국민연금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이면 투자 위험성이 커지고 주식시장 전체가 출렁인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해외주식 투자를 늘리는 것 또한 국내 투자재원을 축소하는 격이어서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대안은 국민연금을 쌓아만 두지 말고 지급하는 비중을 늘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임대주택과 보육원 건립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를 그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다. 일단 그는 현 정부와 결을 달리하는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거면 기금운용본부의 책임성과 투명성·독립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도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보건복지부가 권한을 놓지 않으면서 나중에 누가 책임질 것이냐가 명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이 전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운용위 결정에 따라 복지부가 대한항공에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문제 삼았다.
주 본부장은 4일 정식 출근 하루 만인 오는 5일 기금운용위를 통해 공식활동을 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곧바로 업무보고를 받는 동시에 국회 국정감사 데뷔전을 치러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민연금 CIO는 “주 본부장의 색깔이 강하지만 정부와 국회를 비롯해 근로자·사용자·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가 많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자신의 철학대로만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망했다.
/임세원·강도원기자 wh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